파종
장식이 전혀 없는 수수하고 단조로운 교실에서 학교이사장인 그래드그라인드는 선생과 학생들에게 ‘사실’에 입각한 교육의 중요성과 효용성을 강조한다. 인간성마저도 숫자와 산술로 규정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학생들에게 말에 대해 정의해보라고 요구한다. 그래드그라인드는 모범생이자 우등생인 빗저를 통해 ‘네발짐승. 초식동물. 40개의 이빨 중 어금니 24개, 송곳니 4개, 그리고 앞니 12개’라는 식의 사전적 정의를 제시한 후, 곡마단에서 살고 있는 씨씨에게 보란 듯이 말한다.
“자, 20번 여학생. 이제 말이 어떤 동물인지 알겠지.”
그래드그라인드에겐 말이라는 동물의 유기체적 특성이나 습관보다도 자신이 강조하는 ‘사실’만이 절대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감정이나 정서말고 이성만을 교육시킬 것, 덧셈․뺄셈․곱셈․나눗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는 절대 궁금해하지 말 것, 이것이 그래드그라인드의 기본원칙이다.
학교에서 학생을 한바탕 닦달한 후 의기양양해서 스톤 로지로 돌아오던 그래드그라인드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시켜, ‘마치 새끼토끼처럼 한곳으로 몰이를 당했던’ 자기 아이들 루이자와 톰이, 슬리어리 곡마단이 들어앉은 가건물의 뚫어진 구멍을 통해 곡마단의 묘기를 엿보는 모습을 본 것이다. 곡마단이야말로 공리주의 교육이 금지하는 ‘상상’을 대표하는 집단 아닌가. 놀라서 말문이 막힌 그래드그라인드는 소리친다.
“놀랍고 한심하고 바보 같구나! 도대체 여기에서 무엇을 하는 거냐?”
그가 자식들의 뜻밖의 행동에 절망하여 소리지르던 바로 그 순간, 그의 친구이자 코크타운의 대표적 자본가인 바운더비는 스톤 로지에서 그래드그라인드 부인에게 자신의 불행했던 시절을 과장하여 떠벌리며 친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드그라인드가 돌아와 루이자와 톰이 곡마단에 천박한 호기심을 느끼고 안을 엿보더란 얘기를 꺼내고, 그와 바운더비는 그 탓을 ‘뜨내기 놀이패’의 자식인 씨씨가 아이들에게 불러일으킨 쓸데없는 상상력 때문이라고 단정하고는 씨씨를 학교에서 쫓아내기로 작정한다. 둘은 씨씨의 부친인 주프씨를 만나러 ‘페가수스의 문장’이라는 술집으로 간다. 술집은 코크타운에 있었다.
코크타운은 붉은 벽돌의 도시, 만약 공장 연기와 재가 허락했다면 붉은 색이었을 벽돌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그러나 사실은 야만인의 물감칠한 얼굴처럼 부자연스런 붉음과 검정의 도시였다. 그것은 기계와 높은 굴뚝의 도시였는데 그 높다란 굴뚝으로부터 연기의 뱀이 끊임없이 영원히 기어나와서 결코 풀어지지 않았다. 도시 안에는 검은 운하가 하나 있고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염료 때문에 자줏빛으로 흐르는 강이 하나 있었다. 창으로 꽉 찬 거대한 건물더미가 있는데 거기서는 하루 종일 덜컹거리고 덜덜 떠는 소리가 들렸고, 우울한 광증에 사로잡힌 코끼리의 머리 같은 증기기관의 피스톤이 단조롭게 상하운동을 했다. 서로 똑같이 닮은 큰 길이 몇 개 있었고 한층 더 닮은 작은 거리가 많이 있었다. 그 거리에는 마찬가지로 꼭 닮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포도에서 같은 소리를 내며,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출퇴근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매일은 어제나 내일과 똑같았고 매해는 작년이나 내년과 똑같았다.
그래드그라인드와 바운더비가 술집에 가보니 씨씨의 부친인 주프씨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애초의 결심대로 씨씨를 학교에서 퇴학시키고 나 몰라라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아이를 책임지고 모범생으로 양육할 것인가. 공리주의의 효용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그래드그라인드는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씨씨를 스톤 로지로 데려다 키울 생각을 한다. 그래드그라인드는 ‘충분히 엄격했지만 바운더비만큼 거친 사람’은 아니었으며 ‘그의 성격에 균형을 잡아준 산술에서 오래 전에 상당한 실수를 범하기만 했다면 정말로 친절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자기 몰래 곡마단을 떠났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확인한 후, 씨씨는 그래드그라인드를 따라 스톤 로지로 갈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를 기다리며 곡마단에 계속 있을지 망설인다. 이때 그래드그라인드는 부친의 희망을 대신 전해주며 스톤 로지로 따라나설 것을 권한다.
“씨씨, 네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네게 해줄 유일한 얘기는 건전하고 실제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 몹시 바람직한 일이라는 사실과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네 아버지조차도 너를 위해 그 정도는 뼈저리게 알고 느꼈던 듯하다는 거다.”
슬리어리를 포함한 모든 곡마단원들은 씨씨와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과 그래드그라인드의 ‘친절’ 둘 다를 가슴속 깊이 간직한다.
아빠의 손에 잡혀 집으로 끌려온 루이자와 톰은 또다시 이전과 같은 판에 박은 삶을 살아간다. 차이가 있다면 루이자가 난롯불을 보며 뭔가를 궁금해하는 회수가 늘었다는 점인데, 교육이 강화될수록 루이자의 공허감과 허전함은 깊어만 간다. 그래드그라인드의 선의(善意) 덕택에 스톤 로지에서 살며 교육을 받게 된 씨씨는 부친의 희망대로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만 숫자에 대한 이해나 경제학의 기초에서는 평균 이하에 그친다. 공리주의의 기계적이고 반생명적인 사고틀을 수용하기에 씨씨는 너무 감정이 풍부하고 활력이 가득했다. 루이자와 씨씨 사이에 계속되는 대화는 어느덧 이 집에서 금하는 선을 넘어 곡마단 생활과 가족간의 사랑과 위로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고, 씨씨의 존재가 루이자의 갈망과 허기를 채워주는 만큼 둘 사이의 정서적 유대와 정신적 믿음은 깊어간다.
씨씨가 이 집안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은 루이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가족들에게 베푸는 도움과 친절은 그래드그라인드가 보기에도 뚜렷한 것이어서, 씨씨의 학업결과를 불만으로 여기면서도 ‘도표로 표시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이 아이에게 존재한다는 생각’을 부정할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애초에 그래드그라인드는 씨씨를 자기 틀에 맞추어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확신했지만 정작 변화하기 시작하는 인물은 씨씨가 아니라 그래드그라인드 자신이었다.
코크타운 같은 공장도시에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이 도시의 노동자들은 가혹한 작업환경과 살인적인 저임금 탓에 사용자에 대한 불만을 억누를 길이 없었고, 따라서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 중의 한 명인 스티븐은 다른 노동자들과 조금은 다른 처지에 있다. 그의 일차적 관심사는 주정뱅이인 지금 부인과 이혼하고 레이챌과 재혼하는 것이지, 다른 노동자들처럼 작업환경이나 저임금에 대한 것이 아니다. 스티븐은 바운더비를 찾아가 이혼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우호적인 충고를 구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결혼은 신성한 것이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유지해야 한다는 판에 박힌 대답뿐이다.
스티븐에게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했던 바운더비는 코크타운을 대표하는 명가(名家)와 사돈을 맺어서 자신의 자수성가 신화를 멋지게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공리주의적 계산법에 따라서 바운더비야말로 최고의 사윗감이라고 생각하는 그래드그라인드는 어느날 루이자에게 바운더비를 신랑감으로 천거한다. 바운더비의 청혼 사실을 전달하며 그는 딸에게 결혼 문제를 ‘이성과 계산이라는 튼튼하고 공정한 토대 위에서 판단’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청혼 얘기를 들으면서도 루이자가 ‘주문’에 충실하게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자, 막상 당황하는 쪽은 그래드그라인드였다. 루이자는 결국, “살아 있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나마 제게 적합한 일을 하고 싶어요.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어요”라고 말하며 자포자기에 가까운 심정으로 청혼을 수락한다.
루이자와 바운더비가 결혼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씨씨는 이 결합이 파국으로 끝날 수밖에 없으리라고 직감한다. 씨씨는 비록 수업은 따라가지 못했지만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예지나 판단력에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아이였다.
수확
바운더비가 루이자와 결혼하고, 바운더비의 집안일을 봐주던 스파지트 부인이 바운더비 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지도 일 년이 지났다. 이 은행에서 밀정 겸 밀고자로서 상당한 역할을 하여 입지를 굳힌 빗저는, 무더운 여름 어느날 스파지트 부인에게 노동자들이 생활의 향상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자기처럼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떠벌린다. 빗저는 ‘내가 한 일은 너희들도 할 수 있다. 어째서 못하느냐?’ 면서 빈곤을 당사자가 게으른 탓으로 여기는 코크타운 유력자들의 생각과 같다.
스파지트 부인과 빗저가 대화하는 도중에 하트하우스가 은행으로 찾아온다. 귀족 출신의 하트하우스는 형의 추천으로 코크타운에서의 일자리를 얻자 심심풀이삼아 그 일을 한번 해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러나 ‘될 대로 되라’라는 좌우명이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는 그는 코크타운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곳에나 가볼까, 생각할 정도로 무책임하고 만사에 금방 싫증을 느끼는 위인이다. 런던에서부터 대단한 여성이라고 얘기를 들은 바운더비 부인이 예상보다 너무 어리다는 사실에 관심이 동하지 않았다면, 그는 실제로 코크타운을 곧바로 떠났을 것이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바운더비와 결혼해 쓸쓸하고 의미없는 나날을 살아가는 루이자에게 ‘모든 일이 공허하고 무가치한 것’이라는 하트하우스식 철학은 ‘일종의 위안 겸 변명의 구실’로 여겨진다. 그의 철학을 따르자면 루이자가 새삼 잃은 것도 새삼 희생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상이나 미덕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주위 사람들에 비해 그런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공언하는 하트하우스는 루이자가 보기에 분명 새로운 인간유형이며 또한 그런 만큼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루이자에게 한가지 불만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동생 톰에 대한 것이었다. 루이자가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톰의 희망과 부추김은 결정적인 것이었는데도 톰은 바깥으로 나돌기만 하고 자기에게는 너무나 무관심하지 않은가. 루이자의 가려운 데를 알아차린 하트하우스는 그녀가 보는 가운데 톰을 훈계하여 톰이 누나에게 사과하도록 만드는 장면을 연출하고, 그 이후 둘의 관계는 급진전된다.
한편, 코크타운에서 전개되는 적대적인 노자관계는 스티븐의 처지가 아무리 절박해도 이혼이라는 가정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에만 전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함께 투쟁하든지, 자본가 편에 서서 동료들을 배반하고 그들을 밀고하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스티븐이 끝까지 ‘노동자총연맹’에 가담하기를 거부하자 노동자들은 그와의 관계를 단절한다. 이제 그가 코크타운에서 계속 지내려면 자본가 편에 서는 길밖에 없지만, 명예심이 강한 스티븐으로서는 노동자의 대의를 저버리고 밀고자로 전락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스티븐은 결국, ‘자기가 속한 계급의 편견과 다른 계급의 편견, 둘 다에 의해 희생’된 채 코크타운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코크타운에서 노동자는 ‘사용자나 노동자 한쪽 편으로 길을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속으로는 문제가 곪아가도 겉으론 별탈이 없던 코크타운에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바운더비 은행에 밤 사이 도둑이 들어서 150파운드 남짓한 돈을 훔쳐간 것이다. 그러자 도시를 떠나기 전 며칠 동안 은행 주위를 서성이던 스티븐과 가끔씩 은행 주위에 나타나던 이상한 노파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러나 스티븐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훌륭한 평판’을 누리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은행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루이자는 기절해버리고 만다.
루이자와 하트하우스의 관계가 진전되는 모습에 은근히 쾌재를 부르며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스파지트 부인이다. 예전부터 바운더비와의 결혼을 원했던 이 부인은 이제라도 루이자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것이다. 바운더비가 집을 비운 어느날 스파지트 부인은 결정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하트하우스가 루이자를 껴안고 열정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다가 마침내는 호우가 돼 쏟아지는 가운데 루이자는 외투를 입고 얼굴을 감싼 채 어디론가 급히 떠난다. 둘이 눈이 맞아 달아나는 거라고 생각한 스파지트 부인은 결정적인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루이자의 뒤를 밟는다.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번개는 철로 위에 지그재그로 떨어지고, 상황의 긴박성에 비례해 스파지트 부인의 호흡도 가빠진다. 길가의 파이프가 터져서 하수구는 넘쳐흘렀으며 거리는 온통 물바다였다. 온몸은 비에 완전히 젖었고 움직일 때마다 신발 안에서는 절벅이는 소리가 난다. 그러나… 파지트 부인은 루이자의 자취를 놓치고 만다. 루이자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루이자는 사랑의 도피여행을 떠난 게 아니었다. 스파지트 부인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던 것이다. 루이자가 하트하우스 때문에 마음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배를 난파시키는 빙하에 비유되는 하트하우스의 본질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분별없는 여성은 아니었다. 비에 흠뻑 젖은 채 나타난 루이자를 보고 그래드그라인드는 깜짝 놀라며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한다. 그러나 루이자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바운더비와의 애당초 잘못된 결혼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성장과정 전체와 아버지의 교육철학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아버지, 저는 매순간 한편으로는 잠시도 충족된 적이 없는 굶주림이나 갈증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숫자와 정의가 절대적으로 통하진 않는 영역을 열렬히 갈망하는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며 자랐어요.”
“네가 불행한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아가.”
“아버지, 저는 항상 불행했어요. ……제가 배운 지식은 모르는 것을 의심하고 불신하고 경멸하고 한심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었어요. 인생은 곧 끝날 것이니 조금도 수고와 노력을 들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지막 수단이었으니까요. ……제가 아는 바는 그저 아버지의 철학과 교육이 저를 구하지는 못할 거라는 거죠. 자, 아버지, 저를 이 지경으로 끌고왔으니 다른 방법으로 절 구해주세요!”
그는 딸이 마룻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때맞춰 루이자를 꼭 붙잡았지만 그녀는 무서운 소리로 외쳤다.
“절 붙잡으면 죽어버리겠어요! 바닥에 고꾸라지게 내버려두세요!”
그래드그라인드는 이제까지 디디고 서 있던 땅과 의지하고 있던 버팀목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공리주의의 중요성과 효용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던 그에게 루이자의 비난은 너무나 뜻밖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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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했다가 아침에 깨어난 루이자에게 그래드그라인드가 찾아오지만 말투부터가 평상시와 달리 떨려나온다. 자기도 “잘하려고 그랬다는 점을 믿어달라”고 가까스로 간청하면서도 전날밤에 루이자가 요구했던 대로 그녀를 도와주고 바로잡아줄 방도가 자기에게 있는 것인지부터 믿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이제까지는 ‘머리의 지혜’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가슴의 지혜’도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듯하다고, 오랫만에 막내 제인을 보았는데 그 아이가 씨씨 덕에 긍정적으로 바뀐 걸 보면 “머리가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던 일을 가슴이 소리없이 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도 고백한다.
한편 루이자를 기다리다 지친 하트하우스는 하루 종일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리던 소식은 안 오고, 젊은 부인이 자기를 찾아왔다는 말을 웨이터가 전달한다. 씨씨는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방문한 목적에만 마음을 쏟으며, 앞으로 루이자를 만날 순 없을 거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즉시 코크타운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말 것을 요구한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씨씨 앞에서 하트하우스는 저항할 수단을 찾지 못한다. 자신을 꼼짝 못하게 만든 여성이 고작 곡마단원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하트하우스는 “이거야말로 패배를 마무리짓는 것이로군”이라고 중얼거리며 코크타운을 떠난다.
루이자가 하트하우스와 함께 어디론가 도망갔다고 생각한 스파지트 부인은 런던까지 바운더비를 찾아가 그 소식을 전한다. 불같이 화가 난 바운더비는 당장 스톤 로지로 장인을 찾아오는데 뜻밖에도 루이자가 이 집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렇다고 사과하고 얌전히 물러날 위인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래드그라인드가 미안해하며 변명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루이자를 키워온 방식이나 바운더비 자신과 결혼시킨 과정이 잘못된 것 같다고 후회하듯 이야기하는 참에야. 바운더비의 결정은 단호하다. 다음날 정오까지 루이자를 돌려보낼 것, 그렇지 않으면 루이자의 옷가지 등을 싸서 스톤 로지로 돌려보내겠다는 것이다. 다음날, 정해진 시간이 지나도 루이자가 돌아오지 않자 바운더비는 지체없이 짐을 싸서 보낸다.
루이자의 일을 잊기 위해서인지, 사소한 가정일이 사업적 열정을 약화시키진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바운더비는 은행을 턴 범인을 잡는 일에 더욱 더 매달린다. 현상금에 플래카드를 내걸고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을 뿌리는 등, 이제 누가 보아도 스티븐은 분명한 범인이다. 하루는 스티븐의 여자친구 레이챌이 바운더비에게 이끌려 루이자를 찾아와서, 전에 루이자와 톰이 스티븐을 방문했던 얘기, 스티븐에게 편지를 보냈으니 늦어도 이틀 안에 돌아와 무죄를 입증하리라는 얘기 등을 한다. 그러나 약속했던 이틀이 지나고 사흘, 나흘이 지나도 스티븐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톰은 스티븐이 도망쳤을 거라고 공개적으로 단언하고 코크타운 사람들도 레이챌이 그에게 도망가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낸 게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더 흘러 일주일이 지나도 스티븐은 나타나지 않고 사람들의 의심은 더욱 굳어진다. 레이챌과 루이자, 씨씨만이 스티븐의 무죄를 믿는 가운데 레이챌은 스티븐의 무죄가 밝혀지면 곤란을 겪을 누군가가 스티븐을 중간에 살짝 해치운 게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을 씨씨에게 털어놓는다.
한편, 바운더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범인잡는 일에 누구보다도 열심인 스파지트 부인이 하루는 이 사건의 또다른 용의자인 노파를 찾아내서 바운더비 집에 끌고 온다. 구경꾼이 구름처럼 몰려든 가운데 노파를 본 바운더비는 흥분해서 외친다.
“아니, 어쩌자는 거야? 어쩌자는 거냐고 내가 묻잖소, 스파지트 부인?”
페글러 노파라는 이 할머니는 바로 바운더비의 모친이었던 것이다. 이 노파의 얘기를 통해 바운더비가 그동안 떠벌였던 자수성가에 대한 신화는 말 그대로 허구이자 거짓말이었음이 만천하에 폭로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변명을 늘어놓거나 회개하거나 기가 죽을 위인은 아니다.
바운더비 집에서 이러한 소동이 있고 며칠이 흘렀는데도 스티븐은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스티븐은 어디에 있으며 어째서 돌아오지 않는 걸까. 레이챌과 씨씨는 스티븐을 찾아 코크타운 근처 들판을 수색해보기로 한다. 중간에 잠시 쉬며 무심코 근처를 살피던 이들의 눈에 폐광과 부서진 울타리 쪼가리, 그리고 검은 협곡의 아가리가 눈에 띈다. 좀더 살펴보던 레이챌과 씨씨는 근처에서 스티븐의 모자를 발견한다.
“오, 맙소사! 그가 저 밑에 있어! 저 밑에 있는 거야!”
레이챌은 놀라서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비명만 지른다고 사태가 수습되겠는가. 씨씨는 레이챌을 진정시킨 후 냉정하고 침착하게 구조를 청한다. 인근의 사람들과 소식을 들은 바운더비, 그래드그라인드 등이 급히 달려오고 ‘지옥의 갱’에서 스티븐을 꺼내는 데 사용할 밧줄, 권양기, 장대 등등의 장비도 도착한다. 모여든 사람들이 헌신적인 노력을 다해서 마침내 스티븐을 구조하지만 이미 늦은 듯하다. 스티븐은 레이챌에게 이해와 화해의 중요성을 유언처럼 말하더니 그래드그라인드를 불러달라고 청한다.
“선생님, 저의 누명을 벗겨주고 제 이름을 다른 노동자들에게 명예롭게 만들어주십시오. 그 일을 선생님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드그라인드씨는 당황해서 “어떻게?”, 하고 물었다.
“선생님, 아드님이 방법을 말해줄 겁니다. 그에게 물어보세요.”
순교자이자 희생자로 부각된 스티븐은 결국, ‘구세주의 집으로 안내하는 별’을 보며 죽는다.
스티븐의 부탁을 받고 집에 돌아온 이후, 그래드그라인드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촛불조차 켜지 않은 채 밤늦게까지 방안을 서성인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돈을 훔쳐간 범인이 누구인지, 코크타운으로 돌아오는 스티븐을 중간에 해치운 사람이 누구인지가 이제는 명백해진 것이다. 아들을 차마 경찰에 넘길 순 없고 처벌을 피하도록 해야겠는데, 고민하는 그에게 루이자는 씨씨가 톰을 슬리어리 곡마단으로 벌써 도피시켰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톰을 만나 외국으로 피신시키면, 급한 불은 끄는 셈이다. 그래드그라인드는 루이자, 씨씨와는 다른 길로 곡마단에 가기로 의논한다.
씨씨가 루이자와 함께 슬리어리 곡마단에 도착했을 때 곡마단원들은 한 식구처럼 그들을 반긴다. 곡마단원들이 다음 공연 때문에 물러나고 슬리어리만이 남자, 루이자는 서둘러 “동생은 안전한가요?” 묻는다. 슬리어리는 안전하고 건강하다고 답한 후, 흑인으로 분장해 있는 톰을 널판지에 나 있는 틈새를 통해 보여준다.
“나는 나 나름의 생각이 있는 것이고 아가씨의 부친인 선생님은 또 그 나름의 생각이 있는 것이죠. 아가씨의 동생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나로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모르는 편이 더 낫겠죠. 내가 할 얘기는 선생님이 씨실리아를 도와주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선생님을 도와드리겠다는 것뿐입니다. 저기 있는 흑인 하인 중의 한 명이 아가씨의 동생입니다.”
한 시간 후 그래드그라인드가 도착하고, 톰을 리버풀 항구를 통해 외국으로 도피시킬 계획이 완성된다. 바로 그 순간, 달려왔기 때문에 얼굴이 ‘더욱 하얘진’ 빗저가 나타나더니, 톰을 체포해야겠다고, 곡마단원과 도망치게 그냥 둘 수는 없다고 떠든다. 예상하지 못했던 빗저의 출현에 놀란 일행은 모두들 서둘러 곡마단의 가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옛날 인정에 호소하는 그래드그라인드와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합리적’ 근거에 따라 생각하고 결정할 따름이라는 빗저 사이에 엇갈리는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
“빗저.”
그래드그라인드는 자기가 얼마나 불행한지 보라는 듯 양손을 뻗으며 말했다.
“빗저, 자네의 결심을 누그러뜨릴 방법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군. 자네는 내 학교에서 오랜 기간 배웠지. 그때 자네에게 들인 수고를 기억해서, 자네가 지금의 이익을 버리고 내 자식을 놔주기로 작정할 수만 있다면, 그런 기억의 혜택을 톰에게 베풀도록, 내 부탁하고 간청하겠네.”
“선생님이 이토록 근거없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옛날의 학생이 논쟁하는 투로 대꾸했다.
“돈을 내고 배웠으니 그건 거래였고 졸업을 했으니 거래는 끝난 셈입니다.”
모든 일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게 그래드그라인드 철학의 기본원칙이었다. 아무에게나 무엇이든 공짜로 주거나 공짜로 도움을 제공해서는 절대로 안되었다. 감사하는 마음은 제거되어야 했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생겨나는 미덕은 존재해선 안되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살이의 모든 면면이 계산대 위를 오가는 거래여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해서 천당에 갈 수 없다면 그곳은 정치경제학적인 장소가 아니므로 아무 상관도 없는 장소였다.
“학비가 쌌다는 건 부정하지 않습니다.”
빗저가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그것도 제대로 된 것입니다, 선생님. 가장 싼 시장에서 만들어서 가장 비싼 시장에서 처분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톰을 잡아가서 출세도 하고 돈도 벌겠다는 빗저의 희망은, 그가 짐승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에는 능통하지만 말이나 개 같은 각각의 짐승이 생명체로서 지닌 특성이나 습성에는 무지한 탓에 좌절되고 만다. 톰을 코크타운으로 압송하기 위해 마차에는 태웠지만, 따라오던 말이 폴카춤을 추고 무시무시한 개가 옆에서 지키고 있는데, 죄인이 다른 곳으로 도망간다고 빗저가 꼼짝이나 할 수 있겠는가. 톰은 곡마단원의 재치와 용기 덕에 리버풀로 가서 무사히 외국행 선박에 오른다. 감사의 마음으로 사례하겠다는 그래드그라인드에게 슬리어리는 조용히 말한다.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지 않습니까, 선생님?”
슬리어리가 물을 탄 브랜디 잔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하나는 이 세상에 이기심이 아니고 그것과는 전혀 다른 무엇인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소한 개들의 습성만큼이나 이름 붙이기가 어렵지만 그 사랑도 그 나름대로 계산하거나 계산하지 않는 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어려운 시절》은 디킨즈의 창작세계에서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작품에 비할 때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고, 그래서 그런지 압축미가 확연히 두드러질 뿐 아니라 그의 대부분의 장편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견 산만하면서도 풍성한 느낌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보여주는 주제의식의 강렬함과 현재성, 그리고 문제를 풀어가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작품의 ‘시적’ 경지는 《어려운 시절》을 디킨즈 작품세계의 중심에 놓기에 손색이 없도록 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사회에 대한 디킨즈의 문제의식은 오늘날의 시대에 어떠한 현재성을 지닐까. 우선은 이 작품에서 핵심적으로 비판하는 공리주의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리주의의 실증적 과학방법을 인문․사회분야에 새롭게 적용해 체계화시킨 사람은 벤삼이다. 벤삼의 방법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개 성원의 이익의 총계’가 바로 공동체의 이익이며 따라서 각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으면 사회 전체의 이익은 저절로 극대화된다고 생각했다. 즉, 개인과 사회를 최소단위로 분해해서 철저히 원자화시키는 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에서 드러나는 디킨즈의 생각은, 이런 식의 계산법으로는 실질적인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과 웨일즈에서 이제까지 모은 결혼통계자료’와 ‘생명보험회사나 연금회사의 계산’ 수치를 이용하여 ‘합리적’으로 따져본 다음 적극 추천한 루이자의 결혼이 결국엔 파국으로 끝나는 결말이 그러하고, 말에 대한 사전적 정의와 그 생명체의 습성을 가르치는 일은 무관하다는 사실이 극적으로 밝혀지는 방식 등이 그렇다. 모두가 공리주의의 기본원칙이 지닌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들이다. 추상과 계산 정신에 따라 움직이는 그래드그라인드의 원칙은 크게 볼 때 근대적 산업기술과 자본제 생산양식의 핵심원리에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온갖 개혁이 이루어진 지금에까지 그래드그라인드 무리가 겉만 달리한 채 여전히 번창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난롯불이나 코크타운의 굴뚝을 보며 인생에 대해 공허감과 허전함을 곱씹는 루이자의 모습은, 어찌 생각하면 그래드그라인드의 세계에서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시적이고 극적인 인물들
인물을 제시하는 디킨즈의 솜씨에 주목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등장인물에 부여한 이름부터가 시사적인데 그래드그라인드(Gradgrind)는 뭔가를 항상 ‘간다’는 의미이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계적 사실을 주입하여 아이들의 생기와 상상력을 죽여 없애는 맥초우컴차일드(M'Choakumchild) 선생은 이름부터가 ‘아이를 질식시킨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사용자와 노동자 양자에 의해 희생되는 스티븐(Stephen)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와 이름이 같다.
그러나 디킨즈가 인물을 제시할 때 누가 보아도 뻔한 알레고리적 방법에만 의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언어 하나하나가 쓰이는 방식이나 전달하는 감각에 주목해야 그 천재성의 본령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부분이지만 예컨대, 바운더비와 그래드그라인드의 머리숱에 대한 묘사를 보자. 둘 다 공리주의자이고 막역한 친구 사이여서 그런지 똑같이 숱이 적다. 그러나 바운더비의 경우 숱이 적은 그의 머리카락조차도 보는 사람에게는 ‘떠벌리는 입김에 머리숱이 빠졌고 남아 있는 머리카락도 허풍에 끊임없이 흩날려 무질서하게 엉켜 있다는 추측을 낳음 직했다’고 묘사되는 반면, 그래드그라인드의 경우는 ‘대머리의 가장자리에 뻣뻣하게 나서 번쩍이는 두피에 바람이 닿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전나무 숲 같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전자는 항상 허풍선이 사기꾼의 이미지로 제시되지만 후자는 확신범이고 그래서 그런지 머리카락조차도 뻣뻣한 것이다. 이외에도 ‘사실’ 세력이 지닌 문제점을 상상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로써 설득해내는 솜씨 등은 모두 디킨즈 예술의 시적이고 극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곡마단과 민중
곡마단의 의미나 비중을 따져보는 작업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곡마단은 일차적으로 공리주의 세력과 대립하면서 그 세력이 부정하는 생명력과 창조력을 대표하는 씨씨의 존재에 현실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근거’가 없다면 씨씨라는 인물은 지나치게 가공적인 인물로 비칠지 모르고 그녀의 활약 역시 공허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곡마단은 그래드그라인드의 자식들과 코크타운 노동자들의 삶에서 체계적으로 억눌려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역으로 두드러지게 한다. 작품에서 곡마단이 이러한 비중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직접 등장하는 부분은 많지 않아도―총 37장 중 고작 4장에 불과하다―곡마단과 관계된 이미지가 작품 도처에 편재해 있어서 독자들은 이들의 가치를 항상 의식하는 가운데 코크타운의 세계를 견주면서 평가하기 때문이다.
바운더비는 자신이 ‘뜨내기’였을 때 ‘줄타기곡예’조차 할 수가 없어서 ‘맨땅에서 춤을 추곤’ 했지만 굳은 의지로 노력해서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갔다’고 성장기를 자랑할 뿐 아니라, 나이 50대가 되어서도 모자를 탬버린같이 ‘두드리고’ 급기야는 ‘동방의 댄서같이 머리 위에 썼다’고 묘사된다. 곡마단에서 유래하는 비유는 이외에도 교실 장면에 등장하는 제3의 신사나 하트하우스 같은 인물을 묘사할 때, 그리고 심지어는 코크타운 도시 자체를 묘사할 때도 빈번하게 사용된다. ‘사실의 세력’이 예의 이분법에 근거해서 ‘상상의 세계’를 아무리 억눌러도 상상의 힘은 결코 멸절될 수 없고 어떻게든 자기의 존재를 입증한다는 듯이.
작품의 제목부터가 산업화의 충격을 노래하던 대중의 민요에 많이 등장한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면 동화나 동요, 대중극 속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언급이 많은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예를 들면 바운더비는 ‘성채의 거인’으로, 그의 공장은 ‘요정의 궁궐’로, 그래드그라인드의 자식들이 어릴 때 배우던 선생은 ‘귀신’으로 비유된다. 씨씨에게는 신데렐라 주제가, 스파지트 부인에게는 매부리코를 한 마녀의 주제가 담겨 있다. 모기아나, 뒤틀린 뿔을 지닌 소, 피터 파이퍼 동요,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는 노파 등은 모두 동화나 동요에 나오는 예고, 슬리어리 곡마단의 공연물인 ‘숲의 아이들’이나 ‘거인 살인자 잭’도 마찬가지 예다. 이러한 민중문화적 요소들은 곡마단의 의미가 부각될 수 있는 분위기나 공간을 작품 속에 마련할 뿐 아니라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작가의 생각이 민중적 가치관에 바탕한 것임을 이해할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여러 통로로 접근해보기
《어려운 시절》을 페미니즘적인 각도에서 접근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듯하다. 그래드그라인드 부인은 그와 결혼하기 전부터 돈도 있었고 ‘실없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만큼 ‘사실’에 충실한 여자였지만 즉, 그래드그라인드 체제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온갖 조건들을 갖추었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먼 나날을 살다가 죽는다. 이 부인이 제대로 살아 있던 적은 없다고 할 만한 이유는 그래드그라인드 체제가 유달리 가부장적인 체제이기 때문이다. 루이자와 톰이 곡마단을 엿보다가 들켰을 때도, 난롯불을 보며 뭔가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모친에게 잔소리를 들을 때도, 체제가 금지하는 행위를 먼저 제안하고 실행한 쪽은 루이자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꾸지람은 여자가 먼저 그랬을 리는 없고 남자인 톰이 먼저 부추겼을 거라는 한결같은 질책이다. 코크타운은 여성을 ‘가정의 천사’로 묶어두려는 이념이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만족스런 삶이란 남성에게든 여성에게든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독자가 《어려운 시절》에 다가갈 수 있는 통로는 무수히 많다. 노동운동에 대한 디킨즈의 태도나 공리주의 세력이 구축하려는 ‘사실의 천년왕국’, 그리고 이와 연결된 관료제의 문제에 주목할 수도 있겠고, 결혼이나 인생에서 사랑의 의미에 주목할 수도 있겠다. 요사이 자주 거론되는 환경문제 역시 코크타운의 오염현상과 그것을 구조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근대세계의 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듯하다.
이처럼 소설을 읽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무릇 독서행위란 독자의 현재적 관심과 작품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행위이고, 작품의 의미 역시 그 작품을 읽는 무수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토론과 비평 그리고 쇄신을 통해 확립되는 것이지, 텍스트 속에 또는 소수 비평가들의 비평문 속에 그도 아니면 진공 중에 동그마니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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