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식 먹는 것으로 그대의 가난과 역경, 성공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중요한 것은
몸을 혹사하지 않는 정도의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육체노동자처럼 몸을 많이 쓰는 사람은 그 작업 정도에 따라
꼭 먹어야 할 최적의 식사량 정도가 있습니다.
또한 몸의 크기나 그 기운의 많고 적음, 약함에 따라
그가 먹어야 할 식사량도 달라집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세상에 태어나면
각자의 몫을 갖고 태어납니다.
운이 좋은 사람은 하늘이 먹을 것을 내려 줍니다.
하늘은 그 생명과 먹을 음식을 함께 내려 줍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있으면 밥이 있고
밥이 있으면 생명이 아직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음식에 달린 것입니다.
음식은 생명의 원천이며 평생의 행운과 불운이
모두 음식에서 비롯돼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조심히 다뤄야 하는 것이 음식입니다.
절제해야 할 것이 음식입니다.
타고난 기질과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음식의 양보다
적은 양을 먹는 것이 바로 운명을 갈고 닦는 일입니다.
음식을 절제하는 사람은 타고난 인상이 좋지 않아도
운이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는 늙어서도 행복하고 수명이 짧지 않습니다.
따라서 태어나면서 받은 할당량보다 더 많은 음식을 받게 되고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되니 자연히 수명이 길어지는 것입니다.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만 음식을 절제하지 않고 산 사람은
여러 면에서 부족함이 계속되고 생로병사가 끊이지 않으며
늙어서까지 불행해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절제란 적게 먹는 것 외에도
규칙적인 식사가 포함됩니다.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이
하늘의 태양이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있지 않는 사람은
먹는 시간도 먹는 양도 절제된 규칙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늘로부터 받은 타고난 할당량보다
더 먹지 못하고 오히려 줄어듭니다.
과식으로 음식을 절제하지 않거나 불규칙적이고
아무 때나 음식을 먹는 사람은
평생 생활이 불안정합니다.
결국 가정은 파괴되고 무엇보다 병에 걸리게 됩니다.
작은 병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다
결국 큰 병으로 한데 모여 몸을 칩니다.
거기에 관상까지 좋지 못하면 점차 불행한 일들이 겹쳐 일어나
좋은 죽음을 맞지 못하게 됩니다.
먹는 양을 조절해도 폭식처럼 불안정해지는 날이 많으면
하늘에서 받아 온 행운의 몫도 불안정해집니다.
먹는 양이 일정해야 하늘의 복도 안정됩니다.
엄격하게 음식을 통제하고 따르면서 저절로 얻게 된 통제력이
멀리 떨어져 있던 행운을 내 것으로 끌어오는 것입니다.
주인을 잃고 방황하던 행운이
새로운 주인을 찾아다니다 나에게 오는 형국이 되는 것입니다.
먹는 양을 조절하던 사람이 먹는 양이 흐트러지고 불안정해지면
문제가 생길 징조입니다.
그럴 때는 빠르고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하면
문제가 호전됩니다.
집안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된 사람이라도
날마다 사람을 불러 모으고 미식에 빠져 절제하지 못하면
집이 망할 때가 왔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또는 주인이 은퇴할 징조입니다.
옛말에 교만한 사람은
그 처세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도 식사는 반드시 절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행복은 결국 작아지거나 사라집니다.
오로지 절제된 식사만이 그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으며
생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비록 가난하고 수명이 짧아도
사려 깊게 음식이나 물건, 자신의 소유물을 아껴서 사용하면
스스로 하늘과 땅으로 뻗어나가
그만큼의 행복과 생명을 늘리게 되는 것이 하늘의 이치입니다.
식사는 모든 인간의 발전의 원천입니다.
이런 것을 함부로 먹어 치우면
결국 성공과 발전의 기회의 근간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음식이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음식은 두려운 것입니다.
음식은 사람에게 있어 기적을 가르는 것입니다.
2. 음식과 지금 내가 처한 삶의 이치들
관상가로 이름을 알렸으면서
사람의 운과 운수 대통의 길은 이야기 하지 않고
‘왜 음식과 관련된 가르침만 강조하는가?’ 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이도 많습니다.
많은 이가 운의 좋고 나쁨과
운에 좋은 행동과 좋지 않은 것들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성공을 돕는 ‘운’이라는 것이
결국은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천하를 다스리기 위한
왕도에 관한 것이라는 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심신을 기르는 그 근원이 바로 음식이기 때문이며
이것을 엄격하게 절제할 수 있을 때라야
심신 또한 통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신을 엄격하게 통제할 수 없다면
천하 역시 다스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작게는 자기에게 주어진 어떤 자리나 위치도
지속해서 가질 수 없으며
다스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가 음식에 대해 계속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곡간에 음식이 넘치고 있어도
절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묻는 이가 많습니다.
음식이란 사람의 생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니
충분히 사용해도 되는 것이 아닌지 묻는 것입니다.
허나 사람의 생명을 먹여 살리는 음식이라도
대식가라면 그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폭식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초목에 비료를 과하게 주는 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넓은 논, 밭에 비료를 과하게 주면 잘 자라기는커녕
죽고 말지 않습니까?
사람도 그렇습니다.
과하게 먹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오히려 인명을 해치는 일입니다.
알맞은 비료를 줄 때 풀과 나무와 곡식이 잘 자라는 것처럼
사람도 알맞고 적당하게 먹을 때 자연히 장수하게 됩니다.
그러니 생명을 상하게 하는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하늘의 이치를 알고서도 폭식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하고 맑은 생명을 표적 삼아 불화살을 쏘는 것과 같습니다.
식사의 절제라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배가 모두 차지 않은 상태에서 숟가락을 내려놓는 일은
보통 사람에게 힘든 일이나
성공과 출세, 발전과 행복, 하늘의 운과 부귀영화,
자식과 가문의 안정, 건강하고 긴 수명을 바란다면
못 할 것도 없는 일 아닙니까?
최근 몇 년 동안 잦은 병치레가 계속됐을 뿐 아니라
생활까지 궁핍해졌고 많은 친척이 있지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가족 외에도 나를 지켜 주는 이가 많습니다.
농부들은 오곡을 만들어 우리에게 공급해 주고
장인들은 여러 도구를 만들어 줍니다.
상인들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합니다.
하늘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렇게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귀하게 제공되는 물건들을 낭비하고
쓸데없는 비난과 원망을 마음에 품어 두고
음식까지 함부로 먹어왔으니
천리에 어긋나는 일을 해 온 것입니다.
결국 오장육부가 부패하고 독이 쌓여
병에 걸린 것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물의 덕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불러온 재앙입니다.
음식에 엄격한 사람은 다른 모든 것에도 엄격해지기 쉬워집니다.
음식 절제를 하는 사람은 다른 생활 역시
그 절제된 틀에서 짜이고 관리되기 때문에
갑자기 벌어지는 위태로운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엄격하지 않으면
가업에 힘쓰고 싶어도 실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의 기본이 음식 절제라는 것입니다.
입은 화장실의 입구입니다.
일단 입으로 넣은 것은 다시 내뱉어도 더럽습니다.
똥과 다를 것 없으며 똥과 같습니다.
맛있고 좋은 음식을 화장실에 버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천하에 몹쓸 사람이라도
음식을 똥통에 갖다 버리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같은 것이 바로 음식을 마구 입에 넣는 것입니다.
배부르도록 입에 넣고 삼키는 것은
화장실에 음식을 가져다 버리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편안한 얼굴을 띄고 인상이 좋은 사람에게 물어보면
행복하고 좋은 환경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얼굴은 살아있는 답안지 같은 것입니다.
이쯤 되면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운 나쁜 사람도 자기 절제에 따라 살면
행복한 얼굴을 한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굴만 보고 그 사람의 길흉화복을
점치기를 중단한 것입니다.
사람이 절제할 때는 운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절제하지 않는 시절에는 불운한 얼굴로 바꿔버리니
내가 만난 그 시절의 관상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낭비되는 일에 일조하지 마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덕이요, 음덕이니
이렇게 쌓아가다 보면
필경 좋은 소식이 찾아올 것입니다.
3. 음식과 사람의 운은 하나로 연결된다
우울한 날이 많고 식욕도 거의 없어서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음식을 잘 먹어야 몸과 마음을 키울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 이것이 병일지 걱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사람은 이미 충분히 먹은 사람입니다.
이미 만족감을 느낄 만큼 먹었기 때문에 식욕이 없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지 않고 식욕이 적은 것 같다면
끼니를 줄이면 그만입니다.
세 끼를 먹었다면 두 끼만 먹을 일입니다.
두 끼를 먹었었다면 한 끼로 줄이면 될 일입니다.
음식의 양을 줄이면 적은 양으로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고
식사도 더 잘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식사를 절제하면 식욕이 없다고 할 일이 없어집니다.
그래도 식욕이 없으면 하루 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 것도 좋습니다.
하루 꼬박 굶기를 자주 하다 보면
반찬 없이 소금만 있어도 맛있게 먹게 될 것입니다.
절제하지 않고 무슨 음식이든 충분히 먹는 사람은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더 풍족하게 느끼지도 않고
아주 맛있는 음식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사실 음식이 배에 가득 차 있지 않을 때
기분이 좋고 건강한 느낌이 든다는 걸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폭식하는 것은
불에 뛰어드는 걸 좋아하는 날벌레나 같은 이치입니다.
소인배들은 마음이 금방 흐트러져 절제하지 못하고
툭하면 하늘을 원망하여 평생을 방황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또한 절제한다고 말해도 실상은 음식의 절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니 안타까울 노릇입니다.
비록 태생적으로 작은 몸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라도
소식하고 먹는 것을 절제하며 엄격하게 통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의 흐트러짐이 없어
작은 몸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
덩치 큰 사람도 아랫사람으로 부리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그 위에 선한 일을 행해 돌고 도는 행운을
불러들여야 할 것입니다.
행운은 세상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며
돌고 도는 형국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더불어 행운과 불운이라는 것이
모두 자기가 한 일에 따라 기필코
찾아오는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운은 언제든 보답합니다.
좋은 일, 선한 일을 하면 그 은혜가 돌아옵니다.
불운도 이와 같아서 이것이야말로 천지의 이치입니다.
운이란 것은 모두 이동하고 움직입니다.
비록 작은 선만을 베풀어왔어도
이것이 차곡차곡 쌓여 운으로 드러날 때
천하의 대업이라도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더 이상의 가난은 없어질 뿐 아니라
가난이라는 적도 사라지는 시점이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 ‘선한 사람에게는 가난이 없다’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운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운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운이 나쁘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운은 목숨이 다할 때라야 없어지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한 누구에게나 행운은 있는 것입니다.
다만 살아 있는 동안 더 많은, 좋은 운을 얻고 싶거든
아침 일찍 일어나십시오.
아침에 일어나 하는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고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새벽의 강한 기운을
온몸으로 모두 누리십시오.
또한 음식을 절제하는 것을 그 습관에 더하면
원하는 것이 천리(天理)에 이뤄지고 점차 운이 열릴 것입니다.
운이란 사람 됨됨이에 따라 이리저리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마음을 얼마나 집중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천지의 덕이 담긴 만물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매우 올바른 처신입니다.
또한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는 마음가짐을 기본으로 놓고
절약까지 염두에 두면 집이 안정될 뿐 아니라
집안이 평안해지고 그 집안사람 모두 이 일을 실천하면
세상 사람들의 존경까지 저절로 모이게 될 것입니다.
생명은 곧 음식입니다.
생명과 같은 음식은 어디에서 옵니까?
세상에서 옵니다.
그 세상은 땅이고 하늘입니다.
그러니 모든 물건은 그 재료가 되는 땅에서 얻은 생명입니다.
그럼에도 함부로 물건을 쓰고 버린 사람에게는
세상 만물이 그 행동의 대가를 돌려주게 됩니다.
세상 만물이 등을 돌린 사람에게 사람도 등을 돌려
그를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평생의 운수 대통이 모두 절제, 즉 생명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단명할 사주를 하고 있어도
절제를 실천하면 장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두고
‘그렇다면 생명을 이렇듯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의심하는 이가 있습니다.
생명이란 것은 원래 불생불멸입니다.
길고 짧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마음가짐이 올곧게 가득 차 있는 동안은 죽지 않는 것이니
이런 사람을 선비라고 부릅니다.
4. 그러므로 어려움에 관한 해답은
최근 몇 년 동안 밤낮으로 배가 아파 괴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여러 약을 먹고 신불께 기도를 드려도 좋아지지 않는 것은
과식에서 온 병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신불께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고 있으니
마땅한 보답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신께 기도를 하고 싶으면
자기 식사를 먼저 신께 바치고 나서 기도하도록 하십시오.
세 번 식사할 때마다 금식이라고 생각하고
두 번을 먹고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기도가 신께 닿을 것입니다.
음식의 양을 지금보다 조금 줄이면
모든 음식의 맛이 일어나
더 좋은 맛을 느끼고 병도 나을 것입니다.
고기를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원래 세상에 태어나 사는 모든 이는
나이 들수록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겪을 수밖에 없으니
결국 부자나 가난한 사람 할 것 없이
‘마음은 탁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고 묻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람을 탁하게 하는 것은 육식이니
고기를 먹고 나면 마음이 깨끗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땅에서 나온 것, 거친 음식과 채소를 먹고 나면
마음은 자연스레 맑아집니다.
이렇게 식사하면 마음도 함께 안정됩니다.
그래서 불교 수행자들이 세속에 물든 이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돕고자 하여
자신이 먼저 육식을 금하고 수행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오직 많이 먹지 않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하늘로부터 자신에게 할당된 음식을 잘 인식하고
무분별한 육식을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고기가 앞에 있으면 순식간에 식욕이 생겨
무심코 먹다 보면 언제나 과식하기 쉽습니다.
이것이 벌써 마음이 흐트러진 결과입니다.
후손을 위해 유산을 남기기를 희망하고 있습니까?
이것을 달성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까?
딱 잘라 말해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식에게 유산을 남겨주기 위해 계획하고 희망하는 것은
부모의 자비가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자식에게 오히려 큰 원수가 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절제가 부족하면
금방 재산을 잃을 것이고 집안을 몰락시킬 것입니다.
자손의 번영을 바라고 희망한다면
첫째도 둘째도 부모가 먼저 정직을 기본으로 삼고
평소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 스스로 배우도록 가르치고
음식을 낭비하지 않으며
그 자식 역시 음식을 낭비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가르치는 일을
가장 큰 유산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바탕에 두고 자식에게
따스한 마음과 친근한 관계를 더해가야 합니다.
이런 검소한 행위를 집안의 가훈으로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가장 훌륭한 유산이며
진정으로 가치 있게 베풀어 줄 조상의 자비로움입니다.
초로에 접어들어서
여전히 몸이 안정되지 못하고 장수하고 싶다면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그 양을 엄격하게 조절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록수(福祿壽; 복과 행복과 수명)의 기본입니다.
기본이 흐트러지면 결과가 안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금은보화보다 더 귀한 것이 음식입니까?
사람은 음식으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목숨이 없으면 부모에게 효도할 수 없고
처자식을 돌볼 수도 없겠지요.
세상에서 음식만큼 귀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생명과 함께 받은 것이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먹고,
먹지 못할 때 수명이 다해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받은 음식을 모두 먹어 치우고 나면
결국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로써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매번 한 입이라도 더 먹으면
그만큼 자신의 복록수를 해친다는 뜻입니다.
절제하는 일이 곧 사람에게
복록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