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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나와 친해지는 연습] 요약 (최윤정 지음 / 현대지성, 2025)

by 이나이신기 202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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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친해지는 연습
최윤정 지음 / 현대지성

1장 자기 친화력이 좌우하는 인생

 

자기 친화력을 만드는 세 가지 기둥

힘든 상황을 함께 견딘 친구와는 끈끈한 우정이 생긴다.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말은 최대한 아끼고 웬만하면 너그럽게 넘어간다. 친구의 입장을 이해하려 애쓰며 힘을 북돋는 말을 주고받으며 응원한다.

 

이것을 나 자신에게 똑같이 적용해보면 어떨까? 우정을 지키는 마음으로 나를 돌볼 때 나와의 친밀도가 커져서 자기 사랑의 형태로 변할 것이다. 친구가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들어서 이해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아니듯, 내가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다. 친구를 내가 바꿀 수 없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듯,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다시 말해 자기 친화력은 스스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자신의 감정을 더하거나 빼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지닐 때 생긴다. 이것을 나는 자기 가치감, 자기 공감 능력, 자기 신뢰라는 마음근육으로 정리했다.

 

이 세 가지 마음근육이 튼튼할수록 자기 친화력을 발휘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된다. 각 요소는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 요소 중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나머지 두 가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제 이 각각에 대해 살펴보자.

 

자기 가치감: 자기 가치감(self worth)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얼마나 확신을 지니고 있는지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자신에게 던지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나에게 살 가치와 권리가 있을까?”, “나에게 행복한 삶을 누릴 충분한 자격이 있을까?”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권리인 생존권과 행복권에 대한 질문으로 건강한 자기 가치감이 존재할수록 흔들리지 않는 긍정의 답이 나온다. “그렇다. 나는 살 가치가 있는 존재다. 나에게는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라고 확실히 답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생존권과 행복권이 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 “나에게 살 가치와 권리가 있을까?”라는 문장을 되뇌일 때 일말의 의구심이 슬그머니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자기 가치감은 일종의 자화상이다. 거울에 비추어진 모습이나 사진에 찍힌 모습과 같이 실제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 자기 가치감은 실제 당신의 가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를 얼마나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를 의미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할수록 자기 가치감은 손상을 입는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수치심을 느낀다.

 

자기 공감 능력: 자기 공감 능력(self empathy)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 친절한 친구처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을 보살피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는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할 때가 많다. 파괴적인 분노나 상처로 연약해진 마음이 자신을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어둡고 연약한 면을 마주할 때면 두려움을 느끼고 달아나고 싶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원치 않는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그 이상으로 발전시킬 방법이 없다. 이를테면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분노를 두려워해 외면하는 사람은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분노의 원인도 알 수 없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자신의 모든 측면을 소외시키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면 불필요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감각, 감정, 생각은 수없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 나의 일부를 설명해줄 수는 있지만 나라는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느끼는 분노를 인정한다고 해서 365일 분노에 휩싸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이 분노를 느낀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내려놓아도 괜찮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또 다른 감정, 생각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렇게 얻은 정보는 나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기 신뢰: 자기 신뢰(Self reliance)란 자신의 영향력에 대한 강한 믿음을 뜻한다. 스스로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다. 자기신뢰가 있는 사람은 나는 내가 원하는 나로 성장할 수 있다.”,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갈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기 신뢰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바로 매일의 선택으로 쌓아나가면 된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순간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침대에 누워 오늘은 예외적으로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하는가, 아니면 힘들지만 계획했던 일을 하는 쪽을 선택하는가? 자기 신뢰는 하기로 마음먹었던 일을 선택할 때 쌓인다. 또 세상 속에 뛰어들어 자신에게 필요한 기회를 만들고, 능력을 발휘하는 경험을 통해 점차 강력해진다.

 

어떤 삶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운명론적인 관점을 지니고 산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외적 통제 신념을 지니고 있다고 표현한다. 외적 통제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삶을 수동적인 방관자의 자세로 바라볼 위험이 있다. 마치 꼭두각시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해서 도전을 피하고, 관성에 순응해 쉽게 체념한다. 반면 자기 신뢰가 높은 사람들은 내적 통제 신념을 지니고 있다. 자신을 운명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삶을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연출하는 감독이 된다. 이것은 진짜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른은 자기 존재와 삶을 기꺼이 책임진다. 나의 선택과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동성의 사슬을 끊어내고 맞닥뜨리는 과제에 도전하는 용기는 자기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나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다. 실패하더라도 경험을 통해 배우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불리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대처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정리하면 자기 친화력에는 단순히 나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 나의 가치를 확신하고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나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도전해야 한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목표는 각각의 마음근육을 강화해 자기 친화력이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2장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사람은 오직 나 _ 자기 가치감

 

나에 대한 확신은 오직 나만 줄 수 있다

자기 가치감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행복한 삶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들은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수준 이상의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풍족함, 신체적인 건강, 아름다운 외모 등이 그것이다. 조건을 정해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할수록 자기가치감은 점점 더 손상되어 간다. 명문대에 가겠다는 일념 하에 여러 해 동안 대학입시를 치르고 있는 은우 양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저도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고 싶어요. 입시 생활이 정말 지옥 같은데도 3년째 매달리는 이유가 제가 스스로를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인정해줄 만한 대학에 가야 저도 절 인정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때는 우울한 마음도 깨끗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아직 이루어낸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저를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은우 양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가 외부로부터 주어진다고 착각한다. 여기서 외부 요인이란 타인, 조직, 사회, 문화 등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을 의미한다. 인간은 주변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칭찬과 인정, 존경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부터 비난과 시기, 무시 같은 부정적인 메시지까지 다양한 신호를 주고받는다. 이러한 외부 요인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들은 좋은 평판을 얻고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소모한다.

 

세상 속에서 왜곡된 자아: 특히 SNS에서는 자신의 가치를 외부에서 찾고자 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특별한 여행지, 성공적인 결과물, 사치스러운 소비, 즐거운 교류의 순간만 공유하면서 일상과 동떨어진 삶을 전시한다. 좋아요와 댓글의 수로 자신의 삶을 평가받고 만족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외부의 찬사는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대중의 사랑을 받던 유명인이 어느 날 자살을 선택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헐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스티브 빙은 몇 년 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가 남긴 재산은 무려 6,600억이었다. 물질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 같았지만 자기 가치감을 살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자살은 자신의 가치를 가장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객관적으로 충분한 조건을 갖추어도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비극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은우 양은 다년간 입시를 치르면서 우울증이 악화되어 병원에 온 경우였다. 그런데 막상 진료를 해보니 은우 양은 병원에 오기 한참 전부터 우울한 상태였다. 은우 양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스스로를 내세울 것 없는 부끄러운 존재로 인식했고 명문대생이라는 성취를 달성해야 당당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은우 양에게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자기 가치감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은우 양은 다른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은우 양이 번번이 진학에 실패한 것은 입시라는 외로운 과정을 견뎌낼 동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자신을 돕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 작은 좌절에도 쉽게 무너졌고 자신에 대한 믿음은 자주 흔들렸다. 무너진 자신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로하고 설득하며 응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은우 양은 오히려 자신을 몰아세우고 다그치며 때로는 협박까지 했다. 결국 우울증은 심해지고 번아웃이 찾아왔던 것이다.

 

나의 가치를 의심 없이 받아들일 것: 자신에게 습관적으로 조건을 거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 빠지면”,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되면행복할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그 조건들을 달성하지 못하면 행복할 권리가 없고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여긴다.

 

그런데 과연 외적 조건을 갖추면 자기 가치감을 높일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자기가치감 형성에는 내적 요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나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법이다.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한 외부에서 아무리 우호적인 메시지가 쏟아져도 자기 가치감은 변화하지 않는다. 마치 극성이 다른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원리와 같다. 내면의 자기 평가와 상반된 외부 요인은 아무리 긍정적이어도 흡수되지 않고 겉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자신의 가치를 경험하고 확신하지 않으면 어떠한 방법으로도 자기 가치감을 높일 수 없다. 자기 가치감의 본질을 이해하고 나면 더 이상 잘못된 방법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버리겠다는 결단부터 하라. 자기 가치를 확신하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튼튼한 골격을 세우는 일이다. 믿기 어렵더라도 나는 세상 속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그렇다면 어떻게 나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존재 가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3장 나의 행동과 감정에 공감하기 _ 자기 공감 능력

 

감정은 나의 수호신이다

뇌는 감정을 두려워한다. 감정의 심판관이 되어 감정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분류한다. 그러고는 곧바로 통제 모드로 돌입한다. 좋아하는 감정은 이건 놓치면 안 돼. 더 붙잡아야 해!”라며 꽉 움켜쥐고, 싫어하는 감정은 이 녀석, 너 따위가 왜 여깄어? 당장 사라져!”라며 몰아내려고 애쓴다. 이와 같이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온 감정 습관은 당신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하고 감정을 통제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감정은 나름의 중요한 기능이 있고 생존에 도움이 된다. 불편한 감정조차도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감정은 싸워야 할 적도, 집착해야 할 대상도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면 그만인 자연스러운 경험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감정 앞에서 겁쟁이가 되었을까? 이것은 뇌가 진화 과정에서 발달시킨 본능적인 방어기제와 사회적 학습이 얽혀 만들어졌다.

 

감정반응의 진화적 뿌리: 인간은 부정적인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되어왔다. 두려움과 분노 같은 불쾌한 감정은 원시 환경에서 위험을 피하라라는 강력한 경고로 작용했다. 반면 편안함이나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라는 덜 긴급한 신호였다. 극단적인 원시 환경에서 경고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상들이 살아남았고, 그 유전적 특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졌다. 이렇게 형성된 부정성 편향은 인간이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에 과민 반응하도록 이끈다.

 

뇌는 부정적인 감정을 생사가 걸린 위협으로 착각한다. 통증이나 위협이 감지되면 즉각적으로 투쟁 - 도피 - 경직 반응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가령 맹수에게 물리면 뇌는 싸울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 신속히 결정하도록 지시한다. 이때 싸우기에도 역부족이고 도망칠 방법도 없다면 몸을 얼어붙게 만들어 생존을 도모한다. 이런 반응은 사자가 우리를 쫓아오는 상황에는 분명히 쓸모가 있다. 하지만 슬픔이나 불안 같은 감정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정적 위기 앞에서 뇌의 원초적 생존 매뉴얼은 우리를 더 큰 고통 속에 빠뜨릴 뿐이다.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려는 충동은 고통을 심화시키고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다. 생각이나 행동이 정지되는 경직 반응은 고립감과 무력감을 더할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불리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은 뇌가 정서적 고통을 신체적 고통과 동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fMRI를 활용한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뇌는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구별하지 못했다.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각각 유발했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매우 유사했던 것이다. 뇌의 활동 패턴만 보아서는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지, 정서적 고통을 겪고 있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감정을 가로막는 행복 강박: 감정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또 다른 원인 중에는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을 억압하며 행복에 대한 강박을 부추기는 현대 문화도 있다. 미디어는 완벽한 삶을 이상화하고, SNS에는 행복과 성공을 과시하려는 게시물로 넘쳐난다. 이는 행복과 성취만을 기록하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준다. 긍정적인 사고가 선이라고 강요하는 문화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길 주저하게 만든다. 힐링과 행복에 초점을 맞춘 콘텐츠는 슬픔과 고통을 마땅히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 몰아간다. 직장에서는 사회성이라는 덕목 아래 억지로 웃으며 감정을 삼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보다 억누르고 회피해야 하는 대상으로 느낀다. 이로 인해 슬픔, 분노, 불안과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이런 감정을 느낄 때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내가 문제가 많아서야.”라며 자신을 책망한다.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려는 행복 강박이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로막는다.

 

억누르고 강요할수록 멀어지는 행복: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였던 다니엘 웨그너는 1987년에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흰곰 실험을 시행했다. 한 그룹은 억제 그룹으로 다음 5분 동안 흰곰에 대해 생각하지 마세요.”라는 지시를 받았다. 다른 그룹은 표현 그룹으로 흰곰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세요.”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흰곰이 떠오를 때마다 책상 위에 있는 벨을 누르게 했다. 그 결과, 억제 그룹은 흰곰에 대해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에도 흰곰이 계속 떠올라 오히려 표현 그룹보다 벨을 누르는 빈도가 더 높았다. 억제하려던 시도가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흰곰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억제 반발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감정을 느껴선 안 돼.”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그 감정이 더 강렬하게 당신을 사로잡는다. 마치 스프링을 힘껏 누르면 더 세게 튀어 오르듯이 억누르려는 힘에 비례해 감정은 강렬해진다. 이런 식으로 감정과 싸워서는 무조건 백전백패다. 나쁜 감정이든 좋은 감정이든 결코 지속적이지 않으며, 반드시 사라진다. 아무리 좋은 감정이라도 언젠가는 다른 감정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감정, 나를 돕는 내면의 목소리: 감정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먼저 감정은 왜 존재할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감정은 우리를 잡아먹는 사자가 아니라, 삶의 목적을 일깨워주며 우리를 안전한 방향으로 이끄는 안내자다. 이를테면 슬픔은 상처를 돌보는 의사다. 상실과 아픔을 경험할 때 우리를 치유의 과정으로 이끈다. 분노는 든든한 경비원이다. 누군가 우리의 권리를 침해하려 들 때 여기까지야! 더는 안 돼!”라며 단호히 선을 긋는다. 감정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나면 우리가 수호신을 괴물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감정은 내 일부로서 나를 돕는 존재이지 나를 파괴하지 않는다.

 

감정에 대한 두려움은 그 감정에 압도당할지도 모른다는 비현실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이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면 감정은 나의 전부가 아니라 단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경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구름과 하늘의 비유가 종종 사용된다. 나의 존재는 하늘이고 감정은 그 위를 떠다니는 구름과 같다. 구름은 다양한 모양과 색을 띠며 나타나지만 어떤 것이든 결국 흘러가고 사라진다. 여름철 긴 장마 속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이 영원히 머무를 것 같아도 어느 순간 흩어지기 마련인 것과 같다.

 

감정을 내가 잠시 경험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자신과 동일시하는 순간, 감정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평소 감정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슬프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화가 난다.”와 같은 표현은 마치 감정이 나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 나의 본질이 아니라 단순히 스쳐 가는 경험임을 이해하고 나면 나는 슬프다.”에서 나는 슬픔을 경험한다.”로 관점이 변할 것이다. 감정을 내가 잠시 겪고 있는 현상으로 바라보면 감정에 대해 느끼는 비현실적인 공포와 극심한 거부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13세기의 천재 시인 잘랄루딘 루미가 쓴 시 <여인숙he Guest House>은 감정을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으로 비유한다. 이 시는 모든 감정을 손님처럼 환영하고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감정이라는 손님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거나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들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_잘랄루딘 루미, <여인숙>

 

4장 나를 믿고 나아가는 법 _ 자기 신뢰

 

작은 성공이 가져다주는 자기 신뢰

우리는 거대한 변화를 통해서만 자신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아주 작은 행동 하나가 자기 신뢰의 스위치를 딸깍하고 켜줄 수 있다. 하루 5분의 스트레칭, 혹은 한 줄의 감사 기록처럼 사소해 보이는 행동이 자기 신뢰의 시작점이다. 이런 작은 행동이 나는 해낼 수 있다.”라는 감각을 만들어내고 더 큰 도전과 변화를 받아들일 용기를 준다.

 

동기부여 연설가 멜 로빈스는 작은 행동 하나가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한때 그녀는 깊은 우울과 무기력 속에 빠져 있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것조차 버겁고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일도 고통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나를 응원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작은 행동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 앞에 서서, 몇 초간 거울에 손을 대며 자신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조금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멜은 자신과의 이 작은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이파이브는 내가 나 자신을 믿는다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였어요.” 단 몇 초간의 손짓이었지만 이 단순한 행동이 그녀의 뇌 보상시스템을 자극해 도파민을 분비시켰다. 매일 아침의 간단한 의식은 나는 나를 믿고 응원한다.”라는 메시지를 마음 깊이 새기게 했다.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멜은 무너졌던 자기 신뢰를 회복했고 무기력의 늪에서 벗어나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나를 믿게 하는 씨앗, 작은 성공: 석호 씨는 몇 달 전까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웠다. 우울증으로 인한 무력감은 그의 일상을 무너뜨렸고, 머릿속은 온통 나는 못해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친구와의 약속도, 회사에서의 업무도 모두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석호 씨는 나의 권유로 작은 도전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첫 도전은 아주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기.” 처음엔 이 간단한 행동조차 힘겹게 느껴졌지만 그는 스스로와 약속했다. “이건 나를 위한 거야. 딱 한 번만 해보자.” 그렇게 첫날 침대맡에 놓아둔 물컵을 들어 한 모금의 물을 마셨다. 그 순간 그는 미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작디작은 일이었지만 해냈다라는 느낌이 그를 살짝 미소 짓게 만들었다.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석호 씨는 이 작은 성공을 반복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그는 다른 도전을 추가할 수 있었다. “아침에 창문 열고 환기하기.” 이 두 가지 목표를 매일 실천하며 그는 조금씩 활기를 되찾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석호 씨의 목표는 점점 더 다채로워지고, 한층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다. 매일 5분씩 걷기, 하루 한 끼 건강한 식사 만들기와 같은 도전도 추가했다. 작은 성공들이 쌓일수록 석호 씨는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을 다시 정의할 수 있었다.

 

작은 성공이 강력한 이유는 즉각적인 성취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운동이 끝났을 때 해냈다는 그 강렬한 기분을 떠올려보라. 짧은 순간 우리의 뇌는 보상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도파민을 분비한다. 도파민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더 해보고 싶다라는 동기를 부여하며 다음 성공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어준다.

 

성공 경험이 축적될수록 우리의 뇌는 긍정적으로 재구성된다. 뇌의 보상 회로가 강화되고 자기 신뢰를 키우는 신경망이 형성된다. 작은 성공은 단순한 성취가 아니라 뇌를 훈련하는 과정인 셈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도전과 성취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운다. 결국 작은 성공은 점진적 성취로 이어진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목표를 세우고 그 크기에 압도되어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작은 성공은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는 해독제가 된다. 목표를 작고 구체적으로 나누고, 하나씩 달성하는 과정에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 쌓이게 된다.

 

5장 관계 속에서 자기 친화력 높이기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하라

단비 씨는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지내는 것이 점점 더 편하게 느껴졌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것이 점점 어색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누군가와 함께 그 기쁨을 나누고 싶었지만, 결국 배달 음식을 시켜 혼자 자축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쓸쓸했지만 상처와 스트레스가 없으니 오히려 잘된 거라고 자신을 달랬다. 사실 단비 씨의 마음속에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몇 년 전 믿었던 친구에게 깊은 상처를 받은 뒤로, 단비 씨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면 두려움을 갖거나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게 된다. 심할 경우에는 모든 관계를 회피하고 나홀로족을 자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리에 소속되고,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고자 하는 존재다. 관계에 대한 의욕을 잃는 것은 단순히 외로운 상태가 아니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신과의 관계를 훼손시키며 더 깊은 불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맑은 물을 부을수록 옅어지는 흙탕물처럼: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양면적인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유대감을 얻고 그 속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계로 인해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잃기도 한다. 단비 씨처럼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도 아팠기 때문에 같은 상처를 반복해서 받는 것이 두려워 차라리 혼자가 되길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정서적인 고통을 초래하는 가장 흔한 원인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다른 말로 사회적 통증(Social pain)이라고 하는데,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나 집단에게 소외당할 때 느끼는 정신적 상처를 말한다. 놀라운 사실은 사회적 통증이 신체적 통증보다 더 강렬한 반응을 이끌 때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협력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있고, 이를 통해 생존력을 높인다. 결국 타인에게 인정받고 소속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것은 흙탕물을 맑게 만드는 원리와 같다. 깊고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은 흙탕물이 담긴 그릇에 깨끗하고 신선한 물을 부어주는 것과 같다. 물속에 섞인 진흙을 한순간에 제거할 수 없듯이, 나쁜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도 단숨에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맑은 물을 부어 희석시키다 보면, 흙탕물은 서서히 정화되고 본연의 투명함을 되찾는다. 마찬가지로 관계를 통해 온기와 유대를 느낄 때 소외와 단절로 인한 아픔은 점차 옅어질 것이다.

 

홀로 있으면 치유될 기회를 영영 잃는다: 마틴 셀리그만은 연구를 통해 행복한 사람들은 폭넓고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행복한 사람은 친구가 많았고 결혼할 확률이 높으며, 다양한 단체에 소속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라고 해서 인간관계에서 받았던 상처가 왜 없었겠는가. 다만 그들은 한 번의 아픈 경험으로 앞으로 다가올 무수히 많은 치유와 연결의 경험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로운 인간관계가 어떻게 상처를 회복시키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줄까? 친밀하고 안정적인 관계는 우리에게 삶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두 가지 중요한 메세지를 건넨다.

 

하나는 나라는 존재가 사랑받고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품고 살아간다. 이때 유대감을 주는 관계는 자신의 가치에 긍정적인 확신을 심어준다. 다른 하나는 세상이 나에게 우호적이고 따뜻한 곳이라는 메시지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안전하며 내가 있는 그대로 소속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누에는 고치 밖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그 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나비로 날아오를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가 자신을 온전히 펼치고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관계로부터 연결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못된 관계로 소외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큰 고통을 겪기도 한다. 다만 홀로 남는다면, 상처는 치유될 기회를 영영 잃는다. 고통스러운 관계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려면 관계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건강한 관계 속에서 치유될 기회가 충분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꺼이 세상과 연결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6장 나의 영원한 안전기지 만들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행복은 찰나의 경험이다. 순식간에 찾아왔다가 곧 사라진다. , 행복감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다. 우리의 뇌는 행복에 금방 적응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복에 쉽게 적응하는 뇌: 예지 씨는 20대 초반에 뮤지컬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 무대 위에서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비중 있는 역할을 맡는 것이 그녀의 간절한 꿈이었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는 것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고생도 많이 했다. 언제쯤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막막해 울던 날도 숱하게 많았다. 9년이 흐른 지금, 예지 씨는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제법 큰 규모의 작품에서 원하던 배역을 맡았다. 하지만 예지 씨의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의 축하와 칭찬이 이어졌지만, 예지 씨는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 마음이 공허하고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오랫동안 지탱해주던 무언가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최근 연예인들의 마약 관련 이슈가 화제가 되고 있다. 어렵게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돈과 명예를 모두 얻은 그들이 왜 마약에 빠져드는 것일까? 모든 것을 갖춘 것처럼 보이는 그들 안에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결함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행복감을 오래 유지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지속하는 능력이 삶에서 중요한 강점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순간적인 행복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우리 뇌는 행복에 금방 적응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복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능력은 소수만이 가지고 있다. 이 능력이 극단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종종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마약이다.

 

마약은 우리의 뇌가 느끼는 행복감의 역치(최소한의 자극값)를 높인다. 마약에 길들여진 뇌는 이제 마약 없이는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 강렬한 쾌락을 경험한 중독자들은 깊은 우울감과 공허 속으로 빠져들며 악순환에 빠진다. 한 번 마약에 길들여진 뇌는 점점 더 강력한 마약을 찾게 되며, 그 끝은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심지어 목숨마저 잃는 지경까지 이르게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뇌는 행복에 적응하도록 설계되었을까? 뇌가 행복에 쉽게 적응하지 않는다면, 마약 중독자도 줄어들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게 될 텐데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행복에 쉽게 적응하는 편이 우리에게 더 이롭다. 우리의 뇌는 낯설고 새로운 정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만, 친숙한 정보에는 점차 덜 반응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신경학적 현상을 습관화 또는 적응이라 한다. 만약 뇌가 익숙한 경험에도 처음처럼 계속 반응한다면,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기쁨과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는 편이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

 

또한 한 번 주어진 행복감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면 인류는 발전과 성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안락한 휴식을 포기한 채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치열한 노력 끝에 원하는 성과를 이루었을 때 얻는 보상이 바로 행복감이다. 행복이라는 분명한 보상이 있기에 우리는 생존과 발전을 위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다. 만약 늘 행복이 지속된다면 행복은 더 이상 보상이 아니라 일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도 더 나은 삶을 추구하거나 치열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행복감이 쉽게 사라지는 속성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항상 불행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가 더 의미있는 행복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사람이 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이 질문에 대해 얻은 답은 단순하고도 명확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더 깊고 충만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이란 일시적인 쾌감을 넘어서 삶의 의미와 깊이 연결된 경험이다. 자기 친화력이 높은 사람들은 단순히 행복을 경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행복을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한다.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과는 차별화되는 특징이 있었고, 나는 이것을 행복을 붙잡아두는 다섯 가지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보았다.

 

행복을 붙잡아두는 5가지 기술: 행복을 붙잡아두는 첫 번째 기술은 주체성이다. 이는 행복을 철저한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자기 친화력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존재라고 여긴다. 그들은 행복의 주체가 자신임을 깊이 인식하며, 삶의 방향과 방식을 스스로 설계해나간다. “내 행복은 나에게 달려 있다라는 깨달음은 그들에게 깊은 안전감과 만족감을 선물한다. 외부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힘을 바탕으로, 그들은 진정한 행복의 본질을 경험한다. 이처럼 행복은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사람에게만 다가온다.

 

행복을 붙잡아두는 두 번째 기술은 무엇이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고 행복감을 주는지 아는 것이다. 특히 행복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경험이기에,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관찰하고 배워야 한다. 지금 내가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질문해보는 것이다. “내가 행복을 느꼈던 경험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무엇이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가?” 행복한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자신과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행복의 원천을 이해하고 그 경험을 지속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

 

세 번째 기술은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수년 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소확행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다. 수많은 행복 연구에 따르면, 소확행을 추구하는 것은 행복에 이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행복은 그 크기와 강도에 상관없이 초기화되는 특성이 있다. 이를 긍정심리학에서는 쾌락의 적응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더라도 그로 인한 행복감은 오래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결국 행복은 한 번의 큰 도약이나 성취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작고 반복적인 행복의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데 유리한 전략은 얼마나 자주 행복을 경험하는가이다.

 

행복을 붙잡아두는 네 번째 기술은 음미하는 것이다. 음미는 단순히 행복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경험을 의도적으로 확장하며 삶을 더 충만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심리학 교수인 프레드 브라이언트와 조지프 베로프는 행복을 음미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여 자축하기, 추억하기, 심취하기라는 세 가지 방법을 도출했다. 자축하기는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의도적으로 자신을 격려하고 축하하는 것이다. 추억하기는 행복한 순간을 마음깊이 새기거나 기념할 만한 물건을 통해 그 순간을 되새기는 것이다. 또 심취하기는 행복감을 주는 일에 몰입하고 그 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그 밖에도 감사함을 느끼는 것 또한 행복을 음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행복을 붙잡아두는 다섯 번째 기술은 자신에게 능동적으로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그것들을 일상의 적재적소에 심어둔다.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하거나, 나만의 힐링푸드를 먹으며 위로받거나,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시간을 지혜롭게 배치한다. 행복은 결코 복잡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따뜻한 욕조에서 1분을 더 머무는 것,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아주 단순한 일들이 바로 행복을 가져다준다. 행복을 찾아 헤매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자신에게 작은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길인 것이다.

 

그동안 예지 씨를 지탱해준 것은 목표였다. 목표가 사라지자 그녀는 더 이상 달릴 곳이 없는 경주마처럼 공허함을 느꼈다. 몸도 지쳐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슬럼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라고 제안했다. 또 다른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자신과의 진정한 대화를 나누어보라고 조언했다. 그 후 그녀는 삶을 성취의 연속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며 행복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행복의 본질을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은 그녀를 더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지금 불행하다면 달라져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것은 무겁고 부담스러운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을 선택하고, 그 권한을 온전히 갖는다는 뜻이다. 진정 행복해지고 싶다면 행복을 향한 결단과 실천이 필요하다. 작은 행복을 자주 발견하고, 그것을 음미하고 누리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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