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 본사에서 목격한 기적 (2002년)
일론 머스크는 자동차 업계에서 100년 만에 혁신을 일으키고, 항공 우주업계에서 정부 기관도 해내지 못한 일을 동시에 해냈다. 그의 괴팍한 성격과 기행은 때로 논란을 일으키곤 하지만, 그의 업적은 현대 산업과 기술 발전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머스크는 전기차와 우주여행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테슬라는 빠른 생산 속도로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순수 전기차 기준으로 테슬라보다 많은 생산량을 보유한 업체는 없다. 스페이스X는 우주 궤도에 도달한 첫 민간 기업으로, 이는 러시아, 미국, 중국 등의 정부 기관조차도 어렵게 달성한 성과다. 테슬라의 성장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큰 도전이며, 스페이스X의 성공은 우주 탐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그는 우주여행의 놀라운 경험을 밝히면서, 지구의 대기가 얼마나 얇고 취약한지 실감했다고 했다. 그리고 기후 위기로 인해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취약한지 강조했다. 머스크의 꿈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에 대한 집념
머스크는 1999년에 온라인은행 엑스닷컴(X.com)을 설립하고, 서비스를 출시하는 과정에서 새벽 4시까지 사무실에서 일하고, 책상 밑에서 잠을 자는 일이 빈번했다. 테슬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3년 동안 프리몬트 공장과 네바다 공장에서 거주했다. 처음에는 온종일 일하고 사무실 소파에서 자다가, 나중에는 책상 밑에서 자기 시작했다. 2022년에 트위터를 인수한 후 머스크는 자신이 주당 평균 120시간 이상 일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나는 잠들고, 일어나서 일하고, 다시 잠들고, 일어나서 일하고, 이런 행동을 일주일 내내 반복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성공한 기업가로 여생을 편하게 살 수도 있는데 왜 질주하듯이 일에 몰두하는 걸까?
머스크는 일반적인 억만장자들과 비교할 때 독특하고 검소한 유형의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첫 번째 부인이자 여섯 명의 자녀를 낳은 저스틴 윌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자비에 머스크가 일론 머스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자비에 머스크는 일론 머스크를 포함해 부자를 싫어한다. 부를 독식하는 마음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자비에 머스크는 아버지의 성을 없애고 비비안 윌슨으로 개명했으며, 성전환자가 되었다. 머스크의 전기를 집필한 월터 아이작슨에 따르면, 비비안은 자본주의를 혐오하며 머스크를 향해 격렬한 감정을 표현했다.
머스크는 자비에 머스크와 갈등이 심해지자 2020년부터 2년에 걸쳐 약 1억 2,800만 달러 가치의 저택 일곱 채를 팔아치우고 앞으로는 집을 소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화려한 캘리포니아를 떠나 한적한 텍사스로 이사했다. 2021년부터 모듈형, 접이식 주택 카시타스(Casitas)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 주택의 가격은 5만 달러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머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머스크의 행동은 재벌에게서 보기 힘든 이례적인 사례다. 머스크의 검소함은 그의 전반적인 가치관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스페이스X와 테슬라의 사업 철학과 직접 관련이 있다.
머스크는 독불장군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생활 양식은 검소하고 미니멀리스트적이다. 그는 개인적인 호화로움보다는 인류의 미래와 지속가능성에 더 큰 가치를 둔다. 머스크의 주거 선택에서부터 경영 철학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의 자원을 스페이스X와 테슬라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의 행동은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한 생활에 대한 의식을 나타내며, 물질적 가치를 넘어서 인류가 다행성 종으로 진화해 생존 방식을 확장하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016년 9월, 머스크는 인류가 화성에 진출해야 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인류 역사의 두 가지 가능한 미래를 제시했다. 하나는 지구에 영원히 머물러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기지를 화성에 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류는 다중 행성 생명체가 되어 역사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팰컨 9으로 혁신을 쏘아올리다
머스크는 오늘날 빅테크 기업 CEO들과 달리 공장에서 잠을 자면서 일하는 모습을 20년 넘게 한결같이 보여 주었다. 구글, 애플, 엔비디아의 CEO들이 콘퍼런스홀에 등장할 때, 머스크는 안전모를 쓰고 타워에 올라가 로켓 제작을 진두지휘한다.
나는 실리콘 밸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도시 호손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바로 미국 공대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기업 1위인 스페이스X의 본사가 자리 잡은 곳이다. 머스크는 현재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로켓인 스타십을 우주로 발사하려고 한다. 이러한 도전에 인생을 걸고 싶은 미국 공대생들은 애플, 구글, 엔비디아를 제쳐두고 상장기업도 아닌 스페이스X를 NASA와 테슬라보다도 선호한다. 왜 미국 공대생들은 실리콘 밸리보다 화려하지 않은 호손에서 일하려는 걸까?
화려한 로스앤젤레스 도심과 달리 호손은 도시 전체가 낡고 삭막한 분위기다. 거리에서는 노숙자와 마약 중독자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반면에 스페이스X 본사는 홀로 우주 전쟁을 준비하는 것처럼 강렬한 인상을 준다. 한적한 도시에 우뚝 솟은 팰컨9의 1단 로켓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거대한 물체가 우주에 발사되었다가 원하는 지점에 되돌아와 재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2023년 12월 10일 기준, 스페이스X는 팰컨9을 총 280번 발사했고, 그중 238번 착륙에 성공했으며, 수거한 로켓을 213번 다시 발사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로켓 발사 역사상 한 해 동안 100% 안전한 발사를 이뤄낸 것은 어느 국가도 해내지 못한 성과다. 또한, 나사의 우주왕복선은 저궤도(LEO)로 27,500kg을 발사하는 데 약 15억 달러 즉, 1kg당 54,500달러가 들었다. 반면 팰컨9은 6,200만 달러로 22,800kg(1kg당 약 2,720달러)을 발사할 수 있다. 스페이스X는 거의 매주 팰컨9을 발사해 궤도에 물건을 나르는 안전한 배송 트럭 같다. 그렇기에 세계의 여러 나라가 위성을 믿고 맡긴다.
2024년 1월, 스타십을 배경으로 무대에 올라선 머스크는 화성 진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그는 2023년 스페이스X가 이룩한 성과를 놀라운 수치들과 함께 발표했다. 스페이스X는 2022년에 61회 궤도 로켓 발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고, 2023년에는 총 96회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이 기록에는 우리나라의 군사 정찰 위성도 포함되어 있다). 12명의 우주 비행사를 궤도에 안전하게 보냈으며, 두 번의 스타십 비행 테스트를 진행했다.
스페이스X의 팰컨 로켓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발사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현재까지 스페이스X보다 지구 궤도에 더 많은 로켓을 발사한 정부 기관이나 민간 기업은 없다. 과거 소련 정부가 개발한 소유즈 로켓의 연간 발사 횟수는 약 63회였다. 스페이스X의 연간 발사 횟수 96회는 2023년 모든 정부 기관과 기업의 로켓 발사 비중의 약 43%를 차지하는 놀라운 수치다.
2006년 3월 24일, 최초로 발사한 팰컨 1은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의 첫 번째 로켓이었다. 스페이스X는 세 번 연속 팰컨 1 발사에 실패하며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로켓 발사는 언제나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동안 우주왕복선 콜롬비아 등을 포함해 무수한 로켓이 발사 후 폭발했다. 그런데 민간 스타트업이 화성에 가기 위해 로켓을 발사한다고 했으니, 사람들은 머스크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2012년 3월, 머스크는 미국 CBS의 <60 Minutes>에 출연했다. 앵커 스콧 펠리는 로켓 발사가 연속적으로 실패했을 때 포기하려고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머스크는 자신이 죽거나 완전히 무능력해지지 않는 한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억만장자 투자자 론 바론은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파산에 직면한 머스크가 한 번만 더 발사하자고 임직원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네 번째 발사마저 실패하면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8주 후, 극적으로 마지막 도전에 성공하면서 스페이스X는 로켓을 지구궤도에 진입시킨 최초의 민간 기업이 되었다. 이제 스페이스X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스타십 발사 도전을 진행 중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이런 경영 철학을 가지고 우주 진출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기업가가 또 누가 있을까? 머스크는 우리로 하여금 인식의 지평을, 도로를 넘어 행성과 행성을 잇는 우주로 확장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머스크에게 테슬라는 어떤 존재일까?
테슬라 최초의 전기차 로드스터 (2008년)
일론 머스크의 관심은 왜 전기차에 있을까?
2024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피터슨 자동차 박물관에서 테슬라 전시회가 열렸다. 이곳에는 테슬라가 개발한 모든 전기차가 전시되어 있었으며, 머스크가 사이버트럭을 구상하기 위해 프란츠 폰 홀츠하우젠과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다.
폰 홀츠하우젠은 머스크가 합류를 요청하기 전까지 독일의 폭스바겐, 아우디, 일본의 마즈다에서 일했다. 모두 내연 기관 자동차 회사다. 그는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회사에 흥미를 잃었다고 밝혔다. 그가 테슬라에 합류하기로 한 판단이 대단했던 것은 당시 테슬라가 내연 기관 업계의 시선으로는 망상가들이 모인 작은 스타트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첫 번째 전기차인 테슬라 로드스터를 출시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고, 머스크는 자금 조달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게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투자가 얼어붙은 시기였다.
머스크에 따르면, 테슬라의 자금 조달 라운드는 2008년 12월 24일 저녁 6시에 마감되었다. 만약 이 시간까지 자금이 조달되지 못했다면, 2일 후 급료 지급이 어려워질 상황이었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파산을 막기 위해 페이팔 계좌의 남은 현금을 전액 쏟아부었다. 당시 머스크는 집이나 처분할 수 있는 자산도 없었다. 머스크는 어떻게든 투자자를 찾아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었다. 테슬라는 무엇보다도 투자자들이 전기차를 골프 카트와 연관 짓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격파해야 했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대주주로서 관망하다가 2008년 CEO로 취임하면서 로드스터의 디자인부터 소재, 차체 등 제조 과정 전반에 관여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CEO였던 마틴 에버하드와 CFO 마크 타페닝과 경영권을 두고 심각한 갈등이 일어났다. 2007년 무렵, 머스크는 로드스터의 생산 지연과 운영 문제를 이유로 에버하드를 CEO에서 축출했다. 이에 2009년 에버하드는 머스크를 명예 훼손, 계약 위반 혐의로 고소하며, 그가 자신을 회사에서 쫓아내고 공개적으로 헐뜯었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임원이 머스크와 충돌하며 퇴사했다.
폰 홀츠하우젠은 이러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는 테슬라에 2008년 합류해 14년 이상 머스크와 함께한 리드 디자이너다. 그는 로드스터 이후 출시된 모델 S, 모델 3, 모델 X, 모델 Y, 사이버트럭 등 대부분 차량의 디자인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렇다면, 왜 그는 어설펐던 스타트업 테슬라에 매력을 느꼈을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자동차 업계가 암울한 시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왜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어려운 도전을 선택했을까?
폰 홀츠하우젠은 스페이스X 공장에 방문해 첫 번째 로켓 팰컨 1을 보고 머스크의 미래 구상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머스크가 진심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테슬라에 인생을 걸었다. 테슬라는 100% 순수 전기차로 기후 위기를 늦추려 했다. 이처럼 전기 자동차를 통해 자동차 산업에 혁명을 일으키고, 이는 곧 화성 진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대담한 머스크의 비전은 중요한 인재를 포섭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2013년, 칸 아카데미 설립자 살만 칸은 머스크에게 스페이스X와 테슬라는 전혀 다른 산업인데 어떻게 이들 기업 모두를 운영하기로 생각했는지 질문했다. 머스크는 대학 시절부터 인류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 가지 분야를 고민했으며, 그 결과 인터넷, 지속 가능한 에너지, 그리고 우주 개척을 중요한 산업 분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머스크가 30대 중반이던 2006년에 발표한 첫 번째 마스터 플랜, 40대 중반이던 2016년에 발표한 두 번째 마스터 플랜, 그리고 50대에 접어든 2023년에 발표한 세 번째 마스터 플랜은 테슬라의 중장기적 비전을 드러내는 중요한 이정표들이다. 마스터 플랜 1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세계 전환을 가속화하는 경로를 제시했다. 머스크가 구상한 미래를 향한 첫 번째 단계는 충분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소규모 분량의 고급 전기차를 출시해 이보다 낮은 가격의 프리미엄 차량 개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프리미엄 차량을 팔아 대중 시장을 위한 대량 생산의 궤도에 오르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저렴한 전기차를 출시해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다. 마스터 플랜 3에서 밝혔듯이, 테슬라는 연간 2,000만 대 전기차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108년 만에 테슬라에 백기를 든 포드
테슬라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은 머스크를 쇼맨십의 대가로 여기며, 기후 위기를 앞세워 전기차를 팔아 부자가 되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테슬라와 포드, NASA와 스페이스X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숨겨진 투쟁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머스크는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했던 100년 이상 인류에 각인된 통념, 즉 민간 스타트업이 로켓 발사 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과 자동차는 내연 기관이 최고라는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있다.
20세기 초반 헨리 포드는 자동차는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그는 1903년에 포드 자동차를 설립했고, 1908년 46세가 되던 해에 자동차를 대중화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개발된 자동차가 바로 포드 모델 T다. 포드 모델 T는 대량 생산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운전을 쉽게 만들었다. 이동의 편의성을 맛본 사람들은 자가용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포드 모델 T는 1909년부터 생산을 시작해 1927년까지 무려 1,500만 대 이상 팔렸다. 1928년에 포드 자동차는 모델 T를 잇는 포드 모델 A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내연 기관 시대를 열었다. 포드 모델 시리즈의 열풍 덕분에 부자가 아닌 사람도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포드는 중산층에게 이동의 자유를 선사했지만, 자신이 개발한 자동차가 기후 위기에 이처럼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포드 자동차는 연비가 좋지 않은 대형 차량을 생산하면서 머스크에게 자극을 주었다. 포드 모델 T가 등장한 지 108년 후인 2016년 3월 31일, 머스크는 누구나 탈 수 있는 순수 전기차 모델 3를 공개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머스크는 마스터플랜 3에서 포드 자동차로 인해 형성된 100년의 자동차 문화와 제조 방식을 모두 혁신하겠다고 선언했다.
2023년 5월 26일, 머스크가 인수한 트위터에서 포드의 CEO 제임스 팔리가 테슬라에 협력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포드는 테슬라의 수퍼차저(Supercharger)에 포드 전기차도 충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테슬라와 포드의 이 깜짝 발표는 미국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포드가 치명적인 경쟁사일 수 있는 테슬라와 한배를 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포드에 이어 GM도 충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2025년부터 출시하는 전기차에 테슬라의 충전 규격인 NACS(North American Charging Standard)를 탑재하기로 한 것이다. GM의 결정은 테슬라의 시장 입지와 충전 인프라의 광범위한 채택으로 인해 NACS가 많은 전기차 사용자에게 사실상의 표준이 되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테슬라와 포드의 협력으로, 2024년부터 포드 전기차 구매자들은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있는 12,000개 이상의 테슬라 수퍼차저에서 충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22년 11월 테슬라 초기 투자자로 유명한 론 바론과의 인터뷰에서 머스크는 테슬라 이전에는 아무도 제대로 전기차를 만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바론은 머스크가 없었다면 전기차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전기차를 만들고 싶지 않은 이유는 대부분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2년을 기준으로 테슬라의 전기차 생산 기준 마진이 약 17%인 반면, 포드는 약 4%에 불과했다. 테슬라의 활약이 커질수록 전통 기업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와 수소 자동차를 고집하며,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전기차 전환을 거부하는 모양새다. 토요타는 전기차로의 빠른 전환이 일자리 500만 개 이상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속도 조절을 요구했다.
테슬라는 100만 대를 생산하기까지 12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언론이 테슬라의 몰락을 점쳤다. 그러나 테슬라 임직원은 머스크의 전략을 따랐고, 결국 테슬라 로드스터의 성공적인 데뷔는 모델 S 출시로 이어졌으며, 나중에는 모델 3 출시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2012년 출시된 모델 S는 테슬라의 성장을 촉발시켜 전기차를 주류시장에 각인시켰다. 모델 S의 플랫폼은 2015년에 출시된 모델 X의 플랫폼으로 활용되었다. 모델 X는 팔콘 윙 도어와 세계에서 가장 큰 파노라마 윈드실드와 같은 전례 없는 기능을 도입해 내연 기관의 견고한 소비시장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강렬한 가속감이 인상적인 모델 S (2012년)
독일 경제에 충격을 주고, 중국의 눈높이마저 높여버린 모델 S
테슬라는 모델 S의 초기 차량부터 이미 전체 차량의 모든 컨트롤러에서 OTA(Over-The-Air)를 통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한 마디로 OTA는 차량의 소프트웨어를 무선으로 업데이트하는 과정이다. 전기차 시대를 주도하려는 중국 시장에서도 테슬라는 모델 S에 적용한 OTA 기술로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13년에 모델 S는 중국에서도 올해의 차를 수상했다.
테슬라는 전통 업체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중국 시장을 지배했던 폭스바겐과 달리 자동차를 지속해서 업데이트하고 개선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간주했다. IT에 관심이 많은 중국 소비자들은 테슬라의 기술력에 감탄했다. 모델 S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일상 운전에서 전기차의 역할을 재정의한 것이다. 모델 S는 처음부터 모든 표면의 공기 역학적 항력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개발되었다. 전기차도 내연 기관 차량처럼 적은 에너지로 멀리 주행할 수 있는 효율성이 중요하다. 공기 역학의 최적화는 전기차의 주행 범위를 확장하는 핵심 요인이다. 모델 S처럼 고성능 전기차일수록 빠른 주행 속도에서 공기 저항이 강하면 주행 가능 거리가 급격히 줄어든다. 이는 기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차량의 목적에 맞지 않게 된다.
따라서 테슬라는 모델 S의 외부 표면과 회전하는 바퀴에서 발생하는 공기저항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공기 역학 수준을 높일수록 차량 구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줄어들어 단일 충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머스크와 폰 홀츠하우젠은 모델 S의 바닥 설계 단계부터 차량 표면을 따라 공기 흐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통적인 업체들은 엔진 위치를 고려해 공기 역학적 디자인을 했지만, 테슬라는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차체에 과감하고 유연한 곡선 디자인을 채택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편의성을 놓치지 않았다. 프렁크(frunk)는 ‘front trunk’의 합성어로 테슬라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모델 S에는 크기가 크고 무거워서 차량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엔진을 탑재할 필요가 없었다. 내연 기관 차량과 달리 후드에 후방의 트렁크 공간처럼 전방에도 많은 물건을 적재할 수 있는 프렁크가 탄생했다.
2022년에 모델 S는 0.208의 항력 계수를 기록하여 당시 전 세계 생산 차량 중 가장 낮은 수치를 자랑했다. 그 결과, 현존하는 양산 차량 중 가장 빠른 가속력을 자랑하는 모델 S 플레이드가 탄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판매하는 모델 S 플레이드는 최대 출력 1,020마력으로 시속 100km까지 2.1초 만에 도달한다. 최고 속도는 KTX보다 빠른 시속 322km로 주행 가능 거리는 474km다.
물론 모델 S가 완벽한 차량은 아니다. 모델 S를 운전하면서 비슷한 가격의 고급 세단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여러 단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속 100km 미만에서는 최고의 정숙성을 보여 주지만, 고속 주행에서는 풍절음, 문손잡이 문제 등 자잘한 결함을 해결하려고 서비스 센터를 여러 번 방문하다 보면 머스크에 대한 애정도 식을 수 있다. 또한, 엔진 열이 없기에 겨울에는 액셀러레이터 주변에 찬기가 느껴지는 등 구조적으로 아쉬운 점도 있다. 모델 S의 출시는 1930년대 이후 미국 회사가 설계하고 제조한 첫 번째 성공적인 주류 시장 전기차로서 자동차 역사에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머스크는 테슬라에 처음 투자했을 때, 회사가 실질적으로 직원도 없고 지적 재산도 없는 ‘껍데기 회사’였다고 주장했다. 모델 S는 그가 회사에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왔는지를 상징한다.
테슬라의 운명이 걸린 FSD (2016년)
테슬라와 엔비디아의 자율 주행 전략의 차이점
2015년에 엔비디아에서 열린 GPU 기술 콘퍼런스에서 머스크와 젠슨 황은 자동차 기술의 미래와 자율 주행 차량을 주제로 토론했다. 머스크는 자율 주행차량의 발전이 예상보다 쉽게 달성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자율 주행차량이 엘리베이터처럼 일상적이고 안전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황은 엔비디아가 자율 주행차량을 위한 딥 러닝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테슬라와 엔비디아의 관점 차이가 드러난다. 엔비디아는 완성차 업체가 자율 주행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유연하고 광범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반면 테슬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제어하려 한다. FSD(Full Self Driving; 완전자율 주행)를 전기차에 탑재하는 것을 시작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하드웨어의 자율 주행까지 긴밀하게 통합된 생태계 구축에 집중한다.
나는 2021년 1월, 디어 앤 컴퍼니(이하 “디어”)가 앤비디어와 협력해 개발한 완전 자율 주행 트랙터를 살펴봤다. 전방과 후방에 장착된 총 6쌍의 스테레오 카메라에는 엔비디아의 흥미로운 기술이 들어 있었다. 트랙터는 스테레오 카메라가 캡처한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러한 정보는 이미지를 분석하는 심층 신경망(DNN)으로 전달된다. 수집된 이미지는 라벨링 과정을 거쳐 특정 패턴이나 객체가 할당된다. 예를 들어, 땅, 나무, 하늘 등의 카테고리가 할당되며, 이 과정은 딥 러닝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데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는 처리 속도를 극대화한다.
엔비디아 젯슨(NVIDIA Jetson)은 다수의 센서와 카메라를 처리할 수 있는 강력한 임베디드 컴퓨팅 모듈이다. 젯슨이 탑재된 자동차는 자율 주행 상황에서 하나의 신경망은 물체 인식을 위해 카메라의 입력을 처리하고, 다른 신경망은 거리 측정을 위해 라이다의 입력을 처리하며, 또 다른 신경망은 즉각적인 운전 결정을 처리할 수 있다. 젯슨 기반의 디어 완전 자율 트랙터는 GPS, 카메라, 센서, AI를 활용한다. 존 디어 트랙터를 구매한 농부는 먼저 언덕과 커브 구간을 주행하며 트랙터 시스템이 주행 환경을 학습하도록 한다. 이 과정이 완료되면 트랙터는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작업을 수행한다. 대량 생산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지만,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사회는 자율 주행 시대를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랄 것이다.
토요타,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볼보 등 전통 업체들도 엔비디아의 최첨단 자율 주행 기술을 도입해 테슬라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에는 카메라, 레이더, 라이다(LIDAR; 레이저 펄스를 쏘고 반사되어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하여 반사체의 위치 좌표를 측정하는 레이다 시스템)와 같은 차량 센서에서 취득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과 여러 DNN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자율 주행 소프트웨어 역량이 포함된다. 이와 같이 엔비디아의 컴퓨팅 플랫폼인 DRIVE AGX는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높은 수준의 컴퓨팅 성능을 제공한다. 이처럼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하드웨어 제조사들의 연합 전선은 현재 테슬라의 카메라 비전 기술과 달리 다양한 센서를 장착한 것이 특징이다.
자율 주행 자동차를 개발하려면 방대한 컴퓨팅 성능과 대규모의 소프트웨어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전통 업체가 엔비디아의 도움 없이 수준 높은 자율 주행 기술을 개발하려면 고성능 컴퓨팅, 이미지 처리 및 AI 분야에서 수십 년간 쌓은 전문 지식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테슬라를 제외한 그 어떤 제조사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수직 통합하여 제품에 일체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으로 남아 있다.
테슬라도 아직은 엔비디아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테슬라도 FSD 컴퓨터의 성능 강화를 위해 GPU를 필요로 한다. 테슬라는 2019년 11월부터 2023년 1분기까지 엔비디아의 H100 동급 수준 GPU를 점진적으로 구매해 그 수량을 늘렸으나, 5,000개 미만이었다. 2024년 1분기에는 37,000개 이상을 구매했다. 그럼에도 테슬라는 엔비디아의 GPU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뉴욕 버펄로의 기가팩토리에서 FSD 전용 슈퍼컴퓨터 도조의 성능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자체 FSD 칩을 개발하려는 이러한 전략적 움직임은 핵심 기술을 제어하고, 제삼자 공급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자동차 산업에서 경쟁 우위를 강화하려는 테슬라의 광범위한 목표와 일치한다.
미완성의 FSD가 최대 변수
자율 주행 트랙터와 달리 머스크가 라이다와 레이더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 핵심 이유는 인간이 운전할 때 주변 환경을 인지하는 것처럼 차량의 카메라 두 개로 얻은 데이터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과 카메라만으로 인식한 환경을 AI 신경망이 신속하게 처리하는 자율 주행 시스템인 FSD가 등장했다. FSD는 완전 자율 주행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테슬라의 AI는 이미 라이다와 레이더 없이도 안정적인 운전이 가능할 정도로 발전했다.
시스템 온 칩(System on a Chip; SoC)을 장착한 FSD 컴퓨터는 2대의 독립적인 컴퓨터로 머스크는 이를 두고 한쪽이 고장이 발생해도 전기차는 주행이 가능하다면서 FSD 컴퓨터가 고장이 발생할 확률은 누군가 의식을 잃을 확률보다 훨씬 더 낮다고 주장했다. FSD 컴퓨터는 테슬라 전기차의 글로브 박스와 방화벽에 위치하고 있다.
경쟁 업체의 자율 주행 컴퓨터가 트렁크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것을 감안하면, 테슬라의 컴퓨터는 매우 작지만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이때만 해도 두 대의 FSD 컴퓨터는 독립적으로 모든 비디오 정보를 분석하고 처리했다. 여기에는 레이다, GPS, 지도, IMU 센서, 초음파 센서, 휠 속도 센서 데이터, 조향각 센서, 가속 및 감속 데이터가 포함된다. 이러한 다양한 정보를 두 대의 FSD 컴퓨터가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자율 주행 수준이 고도화된다. 양쪽 컴퓨터가 분석한 도로 상황에 대한 결괏값이 동일할 때 비로소 차량이 움직인다.
그런데 테슬라는 최근 들어 이러한 방식을 포기했다. 레이더 사용을 중단하고 신경망 처리와 결합한 카메라 비전 기반 시스템만 남겨두고, 레이다와 초음파 등 중요한 센서를 제거한 것이다.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및 FSD 시스템 개발에는 V11까지 약 30만 줄의 C++ 코드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FSD V12부터는 뉴럴 네트워크로 대체되었다. 이는 전통적인 코드 작성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테슬라의 전략적 변화다. 즉, AI에 인간의 운전 방식을 분석한 규칙을 제공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믿을 것은 오로지 AI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FSD 베타를 모두 경험한 결과 가장 놀라운 점은, 일상적인 주행 환경에서 오직 카메라 비전만을 사용하는 테슬라 차량이 라이다, 레이더 등 세 가지 종류의 센서를 사용하는 경쟁사 차량보다 더 매끄러운 주행을 실현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FSD 베타는 오토파일럿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긴 자율 주행을 가능하게 했다. 과연 어떤 과정으로 발전했을까?
레벨 5는 완전 자동화 수준이며 모든 운전 조건에서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운전을 제어한다. FSD 베타가 이 정도 수준까지 발전해야 진정한 자율 주행차라고 정의할 수 있다. 테슬라가 레벨 5를 향해 도전하면서 어떤 난관을 맞이했을까?
2014년에 엔지니어로 입사해 테슬라의 자율 주행 개발을 주도한 인도 출신의 아쇼크 엘루스와미는 차선 연결과 같은 작업을 컴퓨터 비전의 기존 방법으로 모델링하는 것이 더 복잡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테슬라는 컴퓨터 비전 기술에서 멈추지 않고 언어 모델링, 강화 학습 같은 다른 분야의 기술을 활용해 이 작업을 모델링하기로 했다. 즉, 입력부터 출력까지 모두 신경망으로 처리하는 자율 주행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엘루스와미에 따르면 테슬라는 취약했던 후처리 단계를 제거하여 계획 시스템에서 높은 품질의 결과물을 도출했다고 한다.
라벨링(labeling)은 자율 주행 시스템에서 중요한 과정으로, 수집된 데이터에 의미 있는 태그나 설명을 추가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도로 이미지에서 신호등, 차량, 보행자 등을 구분해 표시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FSD 시스템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인식하고, 올바르게 반응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사람의 라벨링 작업은 데이터의 정확성을 보장하고, 훈련 데이터의 질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자율 주행 차량의 기술처럼 높은 정밀도가 필요한 작업에서 사람의 라벨링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첫째, 비용과 시간 소모가 크다. 둘째, 높은 정확성을 기대할 수 있지만 결국 사람이 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셋째, 점점 더 커지는 데이터 세트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람이 라벨링 작업을 확장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왜 테슬라의 기존 계획 시스템이 점점 더 많은 AI 시스템을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복잡한 도시 환경에서 FSD를 위해 테슬라 차량과 상호작용을 하는 많은 다른 객체들이 있을 때, 신경망 기반의 알고리즘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전기차가 좌회전해야 하는 교차로에서 보행자들과 대기하는 차량들을 모두 인식하고, 여러 변수를 고려해 최적의 안전 주행 경로를 결정해야 한다. 교차로에서 각 상황을 10밀리초 동안 수천 가지 시나리오로 분석해야 하며, 이는 전통적인 컴퓨팅 방식으로는 처리하기 어렵다. 테슬라는 AI를 사용해 이러한 모든 것을 50밀리초 이내에 실시간으로 계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주행 중인 테슬라 전기차에는 지형지물을 인식하는 카메라들이 부착되어 있다. 이들 카메라로부터 얻은 정보는 자율 주행과 관련된 Al 모델을 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테슬라는 차량의 다양한 센서와 카메라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하여 실제 세계를 기본적으로 재구성할 것이다. 테슬라 엔지니어는 운전자가 거의 직면하지 않는 까다로운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여기에는 악천후, 다양한 조명 조건, 다른 도로 사용자의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FSD 컴퓨터는 다양한 환경에서 시스템을 훈련함으로써 현실 세계에서 정확하고 안전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테슬라, 30년 만에 중국의 철벽 규제를 넘다
머스크는 합작 투자를 알레르기가 생길 정도로 싫어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과 테슬라의 관계에도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 2017년 4월 상하이 오토쇼에서 방문했던 폭스바겐 행사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당시 폭스바겐의 인기는 대단했다. 중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폭스바겐 행사장에서 알게 된 사실은 폭스바겐이 중국에 자동차를 팔려면 반드시 중국 기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건은 무려 30년간 이어온 중국 정부의 철칙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회사가 상하이-폭스바겐이다. 중국 정부는 거대한 내수 시장의 문을 독일에 열어 주고, 중국 기업은 독일 기업들로부터 정교한 동력 시스템, 견고한 차대 구조, 실용적이며 고급스러운 디자인 등 여러 기술을 습득했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 자동차 업계에는 폭스바겐 출신 인사가 많아졌다. 이들은 결국 폭스바겐을 포함한 벤츠, BMW 등 독일 자동차 산업의 최대 경쟁사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2017년 4월, 머스크는 중국의 부총리 왕양을 만났다. 머스크는 합작회사가 아니더라도 테슬라가 중국에서 생산을 시작하면 중국 자동차 산업에 도움이 될 거라고 설득했다. 그의 고집스러운 전략으로 중국 정부가 30년 동안 고집하던 제조업 관련 법안까지 바꾸게 했다. 만약 테슬라가 중국 업체들과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면 FSD와 같은 첨단 소프트웨어 기술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을까? 중국이 쉽게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을 테슬라가 개발했다면 진작에 차별성이 사라졌을 것이다.
머스크는 중국에서 합작 법인 없이 테슬라 공장을 설립하는 복잡한 길을 선택했다. 이 과감한 전략이 테슬라를 중국 내 외국 기업 중 전기차 판매 1위로 이끌고 주요 기술을 보호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독일 기업들이 중국에서 합작법인을 설립한 것이 기술 보호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에 대한 고민을 남긴다.
망한다고 했지만, 세계 판매량 1위로 올라선 모델 Y (2020년)
항공기에서 영감을 얻은 모델 Y 구조화 배터리
테슬라는 기존 자동차 제조 방식을 완전히 재설계하여 혁신적인 모듈식 접근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테슬라 차량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 라스 모래비는 차세대 모델 Y를 위해 개발한 모듈식 병렬 제조 혁신을 통해 비용을 50%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100년 동안 지속해 온 업계의 제조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생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차체의 바닥이 차량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즉, 모델 Y의 구조용 배터리(structural battery)가 그 바닥을 채우는 것이다. 배터리 팩, 카펫, 시트, 센터 콘솔이 하나의 모듈로 장착되기에 문을 열고 내부 부품을 조립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구조용 배터리 덕분에 현재 44%의 더 많은 작업 밀도를 얻었고, 근로자 작업 효율성을 30% 향상시켰다.
테슬라의 구조용 배터리가 자동차 제작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배터리 팩 내부의 지지대와 안정화를 위한 중간 구조물을 없애면서 배터리 셀을 더 밀집시켜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배터리 팩 자체가 구조물로 작용하기 때문에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초기 항공기의 경우 연료 탱크를 별도의 화물로 취급해 기체의 부피가 커지고 불필요한 무게가 추가되었다. 2020년 9월, 머스크는 연료 탱크를 날개에 통합함으로써 항공기의 무게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인 발상의 전환처럼 자동차에도 같은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러 자동차 제조사와 부품 공급 업체들을 만났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가진 곳은 드물었다. 자동차 설계, 제조 공정, 조립 공장을 동시에 설계하는 테슬라이기에 이처럼 급진적인 혁신이 가능한 것이다. 테슬라는 이러한 구조적 개선 설계를 통해 차체 무게를 10% 줄일 수 있었다. 덕분에 주행 가능 거리를 14% 늘리고, 부품 수는 370개 줄이는 효과를 얻었다. 나아가 최종 조립 라인을 약 10% 줄여 그만큼 원가는 낮아지고, 생산 속도는 높아진다.
테슬라는 앞으로 제조 공간이 40%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새로운 공장을 더 빠르고 적은 자본 지출로 건설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동차 조립 비용도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이는 테슬라가 중국의 저가 전기차 출시에 대비하기 위해 2만 5천 달러짜리 자동차를 제공하면서도 여전히 상당한 이익을 낼 수 있는 주요 방법이 될 것이다.
슈퍼컴퓨터 도조라는 변수 (2021년)
AGI에 대한 일론 머스크와 빌 게이츠의 상반된 의견
2024년 5월, 미국 씽크탱크 밀큰 연구소에 초청된 머스크는 AI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AI의 통제되지 않은 개발이 인류에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해 왔다. 그렇다면 여기서 ‘통제’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머스크는 생물학적 지능의 비율이 결국 전체 지능의 1% 미만이 되고, 대다수가 디지털 지능이 되리라 예측했다. 디지털 지능이 생물학적 지능을 훨씬 능가할 것이라는 그의 관점은 AI의 급속한 발전, 컴퓨팅 능력의 기하급수적인 증가, 그리고 사회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AI의 광범위한 통합에 기인한다.
반면 빌 게이츠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 인공지능)에 대해 좀 더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생성형 Al를 기후 변화, 의료, 교육 등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보고 있다. 게이츠는 AI의 윤리적 위험성이 관리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머스크는 생성형 AI가 딥페이크 동영상처럼 사실적인 조작 콘텐츠를 생성하는 능력을 지적하며, 허위 정보를 광범위하게 유포하여 여론을 조작할 잠재력을 우려한다. 이러한 현상이 사회와 민주주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생성형 AI에 대해 머스크와 게이츠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AI의 빠른 발전 속도와 규제의 필요성이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생산하는 허위 정보가 놀라울 정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올바른 데이터를 찾아내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분별할 수 있는 인간의 수가 급속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2023년 11월 《뉴욕 타임스》의 금융 칼럼니스트 앤드류 로스 소킨은 젠슨 황에게 10년 후 인류가 AGI 시대에 돌입할 것인지 물었다. 황은 AGI를 여러 테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컴퓨터로 정의한다면, 그리고 그 테스트를 완수함으로써 인간과 상당히 경쟁력 있는 결과를 내는 것이라면, 5년 이내에 그런 AI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TED 강연에서 오픈 AI의 공동창업자인 일리야 수츠케버는 오픈AI를 경영하면서, 현재와 같은 발전 속도라면 AI가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똑똑해지거나 그 이상으로 똑똑해지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AGI가 인간 사회에 극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AGI가 스스로를 개선할 능력을 갖추게 되면 더 나은 AGI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AGI가 매우 강력해진다면, 마음대로 행동하려는 의식을 가질 수 있는데, 이는 산업 혁명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하면서도 전례 없는 기술의 등장을 우려하게 한다. 그래서 올바른 방향성과 견제를 위해 오픈AI를 설립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옵티머스에 숨겨진 일론 머스크의 빅픽처 (2023년)
일론 머스크를 자극한 아틀라스
테슬라는 2021년 초부터 로봇 개발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다. 머스크는 임원들에게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동영상을 보여 주며 테슬라가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의 호불호와 관계없이 계속 발전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2021년 8월 17일,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한층 더 발전한 아틀라스를 공개했다. 많은 시청자가 군사용으로 활용될 것이라며 두려움을 표했지만, 아틀라스는 키 152cm, 무게 86kg으로 위협적이지 않았다. 아틀라스의 인상적인 민첩성과 빠른 움직임은 28개의 유압 액추에이터 덕분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유압 액추에이터를 사용해 로봇에 강력한 힘을 제공하고, 빠르게 달리고 점프하며 뒤집기도 할 수 있게 한다.
2022년 10월에 공개된 시제품 옵티머스는 테슬라가 본격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몰두한 후 약 반년 만에 선보였다. 2023년 5월에 공개된 옵티머스는 군집 주행이 가능했고, 신경망으로 주변 환경을 학습해 기억하면서 더 나은 동작을 보여주었다. 2023년 12월에 발표된 2세대 옵티머스는 이전보다 균형 잡힌 동작과 정교한 작업이 가능해졌으며, 신경망 기술을 활용해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까지 보여 주었다. 특히 물건을 집을 때 로봇이 강도를 인지할 수 있다는 점은 놀라운 발전이었다. 이 모든 변화가 불과 2년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불과 2년 만에 인식하고, 걷기 시작한 옵티머스
머스크는 AI를 전기차에 적용하는 수준을 넘어서 휴머노이드 로봇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테슬라가 세계에서 가장 큰 로봇 회사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하며 테슬라의 전기차들이 이미 주변 지형을 추론하는 AI를 탑재한 반자각 로봇(Semisentient robots)이라고 주장했다. 머스크는 2022년 어느 시점에 키 약 173cm, 무게 약 56.7kg, 시속 약 8km로 이동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테슬라 봇(Tesla Bot)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테슬라 봇의 머리에는 오토파일럿 시스템을, 가슴에는 주행 컴퓨터 FSD를 탑재하는 등 이미 전기차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이었다.
2022년 10월 1일, 2차 AI 데이에서 불과 6개월 만에 개발한 프로토타입 로봇 범블 C(Bumble C)를 공개했다. 범블 C는 백업 크레인이나 기계적 메커니즘, 케이블 없이 무대 위에서 온전히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테슬라는 범블 C가 인식하는 장면을 공개했는데, 매우 정확하게 객체를 식별했다. 이는 자율 주행을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네트워크를 훈련하는 과정을 로봇에도 적용한 결과였다.
경쟁사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스스로 세계를 탐색할 지능이 부족하고, 매우 비싸서 소량으로만 제작되는 반면, 테슬라의 로봇은 고도의 신경망을 활용할 수 있다. 로봇이 보고, 느끼고, 이동하는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면 결국 수백만 단위로 대량 생산될 것이며, 자동차보다 훨씬 저렴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머스크는 테슬라 로봇을 2만 달러 미만으로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픈AI와 비슷하지만, 전기차를 위한 AI
2023년 3월 공개된 옵티머스 1세대는 깔끔한 외관으로 범블 C와 차별화되었다. 일론 머스크는 옵티머스가 경쟁사와 달리 실제 세계의 AI를 탑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는 테슬라의 자동차 AI가 로봇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인간형 로봇의 모든 행동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로봇이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시각적이거나 언어적으로 간단한 지시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테슬라의 핵심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 5월에 공개된 최신 옵티머스는 범블 C보다 나은 움직임을 보여주었으며, 신경망을 통해 주변 환경을 인지하고 분석하며 기억할 수 있도록 발전했다. 2023년 9월에 공개된 옵티머스는 선반 위의 녹색과 파란색 블록을 색깔별로 분류하고 옮겼다. 특히 신경망은 완전히 온보드(on-board)에서 실행된다. 비전 시스템은 카메라를 통해 시각적 정보를 수집하고, 이 데이터를 처리하여 로봇이 공간을 인지하도록 돕는다. 신경망이 온보드에서 실행된다는 것은 모든 처리가 로봇 내부의 컴퓨터나 프로세서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즉, 옵티머스가 데이터를 처리하고 결정을 내리는 모든 계산이 로봇 내부에서 직접 수행된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옵티머스가 클라우드나 외부 컴퓨터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모든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로봇의 반응 시간을 단축하고, 실시간으로 효율적인 작업을 수행하기 위함이다. 옵티머스 2세대의 최근 현황을 보면,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속도는 동종 업계 대비 상당히 빠르며 대량 생산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AI 전쟁의 서막이 열리다
머스크의 주장과 발전하는 테슬라 FSD를 고려하면, 뛰어난 AI를 탑재한 로봇을 대량 생산할 가능성이 큰 기업은 테슬라다. 지금도 세계 여러 도로에서 테슬라 전기차는 카메라를 통해 신경망에 물리 세계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아틀라스처럼 다양한 동작을 하는 것보다, 로봇이 보고 움직이는 데 필요한 필수 요소에 집중해서 개발한다. 예를 들어, 신형 아틀라스는 머리가 360도 회전하지만, 옵티머스는 상하좌우를 살피고 필요에 따라 몸을 움직여 주변 환경을 분석한다. 대신 옵티머스는 손 부분에서 더 큰 차이를 보인다. 옵티머스의 손은 더 빠르고 복잡하고 정교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로봇이 섬세한 물체를 다루거나 다양한 도구를 작동하는 등 정밀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모든 손가락에 촉각 감지 기능이 있어, 물체와 상호작용 할 때 필요한 그립과 압력을 결정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여러 물건을 만지면서 신경망을 통해 인간 세계를 이해하는 트래픽 입구가 될 가능성도 보여 준다.
테슬라는 모델 3의 생산과 물류 문제를 해결하면서 제조 기술에 능숙해졌다. 옵티머스의 액추에이터는 모두 테슬라가 맞춤 설계했으며, 전기 모터, 기어박스, 파워 일렉트로닉스, 배터리 팩 등 모든 부품을 직접 설계하고 있다. 머스크는 전기 모터와 기어박스는 존재하지만, 테슬라가 원하는 수준의 인간형 로봇에 유용한 시중 부품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형 로봇의 모든 행동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하며 로봇이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이 테슬라의 핵심적인 이점이라고 강조했다. 로봇에게 할 일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거나 말로 간단히 지시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인간과 로봇의 공존 시대가 열릴 것이다. 머스크는 인간 대비 휴머노이드 로봇의 비율이 1대 1보다 클 수도 있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