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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일본인의 ‘무종교’ 인식: 종교 부재인가, 종파 회피인가?

by 이나이신기 202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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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왜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가
아마도시마로

일본 사회에서는 ‘무종교’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무신론이나 종교의 부정을 의미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일본인의 종교 이해가 서구의 교단 종교 중심 사고방식과는 다른 맥락에서 형성되어 왔음을 시사한다. 일본인들은 대체로 특정 종파에 소속되기를 꺼려하면서도, 마쓰리(축제)나 조상 제사, 하쓰모데(신년 첫 참배) 등 종교적 요소를 포함한 전통적 관습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처럼 ‘무종교’는 종교성이 없는 상태라기보다는 특정 종파적 정체성이 없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일본에서의 자연 종교와 교단 종교의 개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교단 종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 등처럼 교조와 교리, 조직을 갖춘 형태의 종교를 말한다. 반면 자연 종교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전승된 생활 속 신앙과 의례를 말하며, 선조 숭배, 마을 축제, 계절 행사 등을 통해 지속된다. 일본인의 종교생활은 주로 이 자연 종교의 범주에 속하며,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무종교’라 자처하는 경향이 강하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일본 사회는 중세까지 불교와 신도가 밀접하게 생활 속에 녹아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유교적 실용주의와 서구 문명의 유입이 종교에 대한 태도에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종교는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전락했고, ‘신도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주장까지 등장하면서 자연 종교는 제도적으로 약화되었다. 종교가 개인의 내면적 문제로 축소되고 공공 영역에서 소외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종교를 생활의 일부로 체화해온 일본인들은 종교를 분명히 규정짓는 데 익숙하지 않다. 따라서 장례, 제사, 성묘 등 분명한 종교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무종교’라 규정하는 모순된 태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신앙에 대한 결핍이 아니라, 종교를 공동체의 평온과 일상을 위한 매개로 이해하는 전통에서 기인한다.

근대 이후의 일본은 천황 중심의 국가 체제 속에서 종교를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교단 종교는 통제되고, 자연 종교는 비종교로 간주되면서 종교 일반에 대한 사회적 경시가 확산되었다. 또한 ‘비종교적인 신도’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면서, 국민은 종교를 가지지 않았지만 천황제를 숭배하고 국가 의례에 참여하는 이중 구조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일본인의 종교성이 단순히 교단 종교의 부정이나 회피가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 일상의 지속, 전통의 계승에 기초한 유연하고 비공식적인 신앙 체계임을 보여준다. 일상 속에서 의례화된 종교행위는 종교라기보다는 ‘생활문화’로 받아들여졌고, 종교적 체계에 대한 분명한 인식 없이 행해지는 이러한 관습은 결국 일본식 ‘무종교’ 정체성의 기반이 되었다.

종교가 일상의 연속선상에 있는 일본 사회에서는 특별한 교리를 따르지 않아도 종교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무종교’라는 표현은 종종 실제로는 다양한 종교적 행위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에도, 의식적으로 그것을 종교로 인식하지 않는 문화적 특수성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무신론과는 구별되며, 일본 사회의 집단주의적, 조화 지향적인 문화 속에서 형성된 종교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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