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까?”
호기심을 잃은 뇌에 경고를 보내는 뇌과학자의 메시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누가 메시지를 보냈는지, 오늘 날씨는 어떤지, 어제보다 주식은 얼마나 올랐는지—그런데 정작 중요한 질문 하나에는 잘 대답하지 못한다.
바로, “요즘 나는 무엇에 호기심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이다.
최근, 일본의 뇌과학자이자 정신과 전문의 가토 도시노리가 쓴 『호기심의 뇌과학』을 읽으며 내 마음 한켠이 먹먹해졌다. 이 책은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중년 이후 삶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뇌의 구조와 기능 저하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실질적 해법을 제시하는 **‘호기심 회복 매뉴얼’**이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단 하나였다.
“설레지 않으면 뇌는 죽는다.”
무기력한 당신, 뇌가 보내는 마지막 신호일지도
가토 도시노리의 클리닉에는 매일같이 40~60대의 중년 환자들이 MRI를 찍기 위해 찾아온다. 대부분의 이들은 건망증, 무기력, 우울감, 심지어 삶의 방향성 상실까지 복합적인 증상을 호소한다. 그런데 뇌 영상과 심층 상담을 통해 드러난 공통점은 다름 아닌 ‘호기심 상실’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요즘 뭐가 재미가 없다”,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긴 한데, 귀찮다”, “이게 다 나이 탓이겠지”라고 말한다. 문제는 대부분이 호기심을 잃은 상태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토 박사는 단언한다.
“호기심을 잃는 순간, 뇌는 서서히 죽어간다.”
‘남의 감정은 잘 읽지만, 내 감정은 모르는 사람들’
왜 하필 중년일까? 이 질문에 대한 가토 도시노리의 답은 인상 깊다.
그는 뇌를 기능별로 나눈 8개의 ‘뇌 섹터’ 개념을 제시하는데, 그 중에서도 ‘감정계 섹터’는 인간의 감정, 호기심, 공감에 깊이 관련된다. 이 감정계 섹터는 **우뇌(타인 감정)**와 **좌뇌(자기 감정)**로 나뉘며, 건강한 감정 발달은 이 두 감정 섹터가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많은 중년 환자들은 우뇌 감정 섹터는 잘 발달했지만 좌뇌 감정 섹터는 거의 기능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타인의 감정은 기가 막히게 읽어내지만, 정작 자기 감정은 무시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상태는 수십 년간 ‘사회적 성공’을 목표로 살아온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다. 부모, 학교, 회사, 사회가 말하는 기준에 맞추다 보면 자기 감정은 자연스럽게 억눌리게 된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른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가?”
“나는 왜 이토록 무기력한가?”
이 질문이 떠오르는 시기가 45세 전후다.
바로, 좌뇌 감정이 깨어나며 보내는 뇌의 구조적 반란이다.
호기심 없는 뇌는 기억도 못한다
많은 중년들이 겪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기억력 저하’다.
하지만 가토 박사는 기억력 감퇴가 단순히 나이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뇌 과학적으로 보면, 기억은 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좌뇌 감정—자기 감정에서 비롯된 ‘호기심’은 기억에 강한 잔상을 남긴다. 반면, 사회적 기준이나 타인의 기대에 따라 억지로 만든 기억은 금세 사라진다.
어린 시절, 좋아하는 장난감에 대한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나도 선명하다. 반면, 상사의 눈치를 보며 외운 숫자나 회의 내용은 며칠 지나면 희미해진다.
바로 이 차이의 근원에는 **‘감정의 주체’**가 있다.
가토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호기심은 기억력을 살리는 촉매다.”
뇌는 나이에 상관없이 성장한다
우리는 흔히 “나이 들면 뇌가 늙는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뇌는 죽을 때까지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관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뇌에는 ‘잠재능력세포’라는, 아직 쓰이지 않은 신경세포들이 잠자고 있다. 이 세포들은 외부 자극을 통해 언제든지 깨어날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호기심’이라는 불씨가 있어야 한다.
자극 없이 반복되는 일상, 감정 없는 루틴은 이 잠재세포를 깨우지 못한다. 반면,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익히려는 과정에서 뇌는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회로를 확장시킨다.
가토 도시노리는 이를 “뇌의 나뭇가지”라 표현하며, 자극을 줄수록 나뭇가지는 무성하게 뻗어나간다고 설명한다. 중요한 건 이 과정이 50대든, 70대든, 언제든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호기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
호기심은 훈련으로 되살릴 수 있다. 거창한 방법이 필요하지 않다. 가토 박사는 다음의 간단한 원칙을 제시한다.
- 호기심 결여 상태임을 인식하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설레지 않는다면, 그건 뇌가 보내는 ‘감정 결핍 경고’다. - 좌뇌 감정을 깨워라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어릴 적 설레었던 것들을 떠올리고 다시 시도해보라. 작고 사소한 것이면 충분하다. 그건 ‘뇌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 감정을 따라라
“이 나이에 뭘…”이라는 체념은 뇌의 회로를 닫아버린다. 나이를 불문하고,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사람만이 뇌의 성장 회로를 여는 자격을 갖는다.
나이보다 무서운 건 무감정이다
우리는 늘 나이에 갇혀 산다. 몇 살이니까 이런 일은 못 해, 이젠 도전하기엔 늦었어—그러나 뇌과학은 말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호기심이 깨어나는 첫 순간이라고.
『호기심의 뇌과학』은 묻는다.
“지금 당신은 무엇에 설레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고개를 떨군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한 경종이자, 따뜻한 불씨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다. 뇌가 보내는 마지막 구조신호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신호는, 지금 당신의 좌뇌 감정이 깨어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마무리하며: 뇌에 설렘을 심자
‘노력’도 ‘인내’도 뇌를 성장시키지 않는다.
뇌는 ‘호기심’을 먹고 자란다.
중년 이후의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기회다. 좌뇌 감정이 깨어나고 있으니, 이제는 타인의 감정이 아니라 나의 감정에 귀 기울일 시간이다.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무엇에 다시 설렐 수 있을지” 고민하고, 아주 사소한 것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것.
뇌는 다시 자랄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당신의 감정만 준비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