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숨결을 따라,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만난 나의 시작
― 『안녕! 내 사랑 프랑스』 허연재 작가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여행은 때때로 도피다.
그리고 그 도피의 끝에는, 우리가 정말로 마주하고 싶었던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
2024년 겨울, 허연재 작가는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향한다. 목적지는 파리 북서쪽의 작은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 이곳은 빈센트 반 고흐가 생의 마지막 두 달을 보내며 약 80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곳이다. 작가는 이 마을을 향하면서 고백한다. “반 고흐의 끝에서, 나는 나의 시작을 찾고 싶었다”고.
🌿 고흐의 여정을 따라 프랑스로
샤를드골 공항 근처 호텔에서 시작된 아침. 여행 동료들과 렌터카에 짐을 싣고, 비 오는 프랑스의 회색 하늘을 가르며 첫 여정지는 정해져 있었다. 바로 오베르쉬르우아즈. 도시의 소란을 벗어난 시골 풍경은 허연재 작가의 지친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한가로운 마을 사람들과 와인잔을 기울이는 테라스의 사람들, 버터 냄새 풍기는 빵집 앞. 삶은 이처럼 묵묵히 흘러간다.
그 마을 한편, 작은 시청 앞에는 고흐가 그렸던 ‘오베르의 시청’이 실물과 나란히 걸려 있다. 마치 “여기가 맞아, 네가 찾던 이야기의 실마리가 여기 있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 라부 여관,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느껴지는 곳
라부 여관(Auberge Ravoux)은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 70일을 지낸 곳이다. 현재는 고흐 박물관이자 식당으로 운영되며, 수십 년 전 그대로의 외관을 간직하고 있다. 2층은 아트숍, 그리고 그 위 3층에 그의 방이 있다.
작가가 라부 여관의 계단을 오를 때 묘사하는 감각은 실로 생생하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균열진 벽, 오래된 먼지 냄새. 그 공간에 도달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건 서너 평 남짓의 초라한 방. 아무것도 없다. 단 하나, 오래된 나무 의자 하나만 남아 있다.
이 방에 머물렀던 고흐는, 삶의 끝자락에서 매일 캔버스를 펼치고 붓을 들었다. 70일 동안 80점을 남겼다는 사실은, 작가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죽고 싶던 사람에게, 이토록 많은 창작욕이 가능했을까?”
🌙 고흐의 슬픔과 작가의 상처가 교차할 때
“슬픔은 영원히 지속될 거야.”
― 고흐가 생을 마감하기 전 남긴 말.
작가는 이 말을 곱씹으며 라부 여관의 작은 창문을 바라본다. 책 한 권 크기밖에 되지 않는 그 창은, 이 방에서 유일하게 세상의 빛이 들어오는 통로였다. 햇살이 들면 그는 오늘 하루를 다시 살아보려 했을 것이고, 달빛이 비추면 그 빛 속에서 좌절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코로나 이후, 닫힌 길 위에서 방황했던 자신. 사랑, 인간관계, 커리어, 신념 ― 모든 것이 무너졌던 시간. “나, 잘못 살았던 걸까?”라는 절망적인 질문을 매일 품으며 살아갔던 그녀는, 고흐의 삶을 공부하며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이곳까지 오게 된다.
그는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혼란스러웠지만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절망 속에서도 매일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고흐가 ‘살고 싶었다’는 증거였다. 작가는 이 깨달음에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 Nothing to See, but Everything to Feel
라부 여관 공식 홈페이지에 쓰인 문구, “볼 건 없지만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말은 허연재 작가의 여행기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준다.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 무엇인가 볼 것을 기대한다. 아름다운 건물, 역사적인 유적, 화려한 예술 작품. 그러나 이 여행의 목적지는 그 모든 것에서 한 걸음 비껴나 있다. 고흐의 방엔 눈에 띄는 유물도, 설명도 없다. 심지어 고흐의 유품은 자살 이후 여관 주인이 모두 불태워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은 작가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왜냐하면 그 방 안엔 ‘삶의 끝자락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한 인간의 흔적’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내 안의 ‘다시 시작’
이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고흐의 끝자락에서, 작가는 자신의 새 출발을 준비했다. 오베르쉬르우아즈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작고 허름한 방 안의 고요는 그녀에게 새로운 다짐을 남긴다.
삶은 우리를 자주 시험한다. 방향을 잃게 하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반 고흐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끝까지 예술에 몰두하며 살아 있었고, 작가는 그 몰두를 통해 살아야 할 이유를 다시 발견했다.
📝 마무리하며: 당신의 인생에도 반 고흐가 필요하다면
혹시 지금의 당신도 삶의 길목에서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면, 작가가 찾은 그 방처럼, 당신만의 ‘고흐의 방’을 찾아보길 권한다. 볼 것은 없지만,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반 고흐의 끝이 허연재 작가의 시작이었듯이.